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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엇보다 생명과 사람이 먼저다. - '극단 모시는 사람들' 김정숙 대표
작성자 : 브라이어스 등록일시 : 2018-02-27 조회 : 7135

지난 1월, 제26회 서울어린이연극상에서 ‘쓰레기꽃’이란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하신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 대표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은 곳은 극단 사무실이 있는 과천시민회관이었다. 처음으로 찾은 과천시민회관에는 여러 체육 시설 및 문화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특히 김연아 선수가 연습을 했다는 국제 규격의 아이스링크가 내 시선을 끌었다. 링크 가운데에는 고개를 젖히고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도는 어린 김연아 꿈나무들이 있었고 그들 옆에는 쉴 세 없이 지도의 말을 건네는 코치님이 계셨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문득 아이들이 꿈꿀 수 있게 가이드를 해주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1> <사진 1> 극단 '모시는 사람들'_김정숙 대표

아동극을 만드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극을 만들고자 한다. 모두의 바람이고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를 실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옆에서 코치처럼 말을 건네는 예술가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한참 하다가 김연아 꿈나무를 뒤로하고 ‘아동극의 코치’ 격이신 김정숙 대표님을 만나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이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로서, 연출로서, 극작가로서 오롯이 30년 이상을 살아오신 대표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조용한 카리스마를 뿜는 수장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계셨다. 아주 격정적이지도, 그렇다고 밑으로 가라앉지도 않은 단단한 목소리로 당신의 생각을 차분히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지난 세월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Q. 먼저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선약이 있어서 시상식에 못 갔는데, 저도 깜짝 놀랐어요. 옛날 99년인가, 8회 때 ‘사랑의 선물 방정환’이란 작품으로 제작상, 희곡상, 연기상을 받은 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상을 받은 거예요. 17년 만에 참가했는데 이렇게 상을 주시니, 뭐라고 해야 하나, 다시 이정표가 생긴 느낌이에요. 길을 가다 조금 헷갈렸을 때 이쪽으로 가세요,라고 해주는 이정표를 만난 느낌? 혹은 기차 티켓을 받은 느낌? 맞는 길을 가고 있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 기뻤어요. 계속 그 길로 가면 될 것 같아요.

 

Q. 올해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30년이 됐습니다. 작가, 연출, 대표 역할을 동시에 하고 계시는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실 것 같아요. 잠은 많이 주무시나요? 시간을 어떻게 짜시는지요.

그냥 24시간, 제가 온전히 ‘모시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모든 생각이 극단, 연극, 혹은 지금 만들고 있는 작업, 앞으로의 스케줄과 방향성에 맞춰져 있어요. 숨쉬기처럼 몸에 베어져 있죠. 요즘은 스마트폰에 메모를 할 수 있으니까 언제 어디서나 작품을 쓰고 아이디어를 얻고, 스케일-업을 할 수가 있어요. 안중근 선생님께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친다고 하셨는데, 저는 하루라도 연극 생각을 하지 않으면 혼자 민망해져요. 어떻게 선한 작품을 만들어서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하나의 아이디어라도 누구를 위한 아이디어일까를 생각하죠. 그게 관객을 향해 있지 않으면 아낌없이 내려놓을 수 있고요. 풀리지 않으면 꿈에서라도 풀 수 있게 부탁해요.

<사진2> <사진 2> 잡아먹으면 맛있을까 없을까하고 철수를 놀리는 망태할아버지의 모습

뜬금없이 이 분이 종교를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졌다. 여쭤보니 ‘마음속에 굳건히 생명을 모신다’라는 답을 받았다. 종교는 믿지 않으나 원초적인 생명의 힘을 믿는다 하셨다. ‘생명의 힘’이라니, 그게 과연 무엇일까? 그 뜻은 이후에 따라오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레 이해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근본에 대한 탐구에 집중하는 그녀였다.

 

Q. 극단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89년에 창단하여 초창기에는 창작 뮤지컬을 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창작 뮤지컬을 넘어서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상상의 한계가 브로드웨이를 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다들 브로드웨이가 마치 뮤지컬의 완성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전 소리극의 형태를 좋아했을 뿐이거든요. 추구하는 건 소리극인데 드러나는 표현이 브로드웨이적인 구성이다 보니 내 안에서 충돌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다시 본래 연극의 힘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같은 작품이요. 물질적인 것이 너무 포화되었을 때 오히려 그걸 걷어내고 배우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작업들로 바뀌었어요.

 

Q. 작품의 성격도 바뀌었겠네요.

제가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있는데요, 해방 후 정세가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우리나라로 돌아오시면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진리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하리라.’,라고 하셨어요. 제가 지금 그런 생각을 해요. 무대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지라도 결국 연극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힘이라고요. 작품을 쓸 때 제가 저에게 ‘일단 배우만 나와!’라고 말해요. 영상이 꼭 필요하다면 요만큼만 들어와, 조명이 꼭 필요하다면 전구 하나만 들어와, 이런 식이죠. 사실 배우들이 너무 가난해요. 무대나 조명에 돈을 들이면 배우들은 그냥 희생해주는 동료가 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이번 ‘쓰레기꽃’을 만들 때 극단 창고에 있는 걸 다 끌어내어 세트를 만들자고 했어요. 배우 외적인 요소에 시간 쓰는 일을 줄이고 관객에게 배우의 이야기가 잘 들리도록 배우 집중력을 높였죠.

 

Q. 지금까지 계속 창작극을 만드셨는데요, 창작극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오는 4월에 하는 ‘행복한 왕자’도 오스카 와일드 거예요. 과거엔 우리 것이어야 한다는 다소 국수적인 입장이 강했는데 지금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이타심, 동정심, 나눔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 주제를 잘 나타내는 이야기가 ‘행복한 왕자’였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잘 전달할까 생각하게 됐죠. 꼭 ‘내가 창작을 해야지’, 같은 생각은 이제 없어요. 안데르센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가끔 안데르센의 소년 모습을 상상해요. 밤에 문을 두들기며 ‘제가 이야기를 잘 하는데 저녁 한 끼만 주시면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던, 삐쩍 마르고 주근깨 박힌 그 소년이 부잣집 거실에 앉아 ‘미운 오리 새끼’와 ‘인어공주’를 이야기하던, 배불리 저녁을 얻어먹은 후 다시 누구네 집의 마구간으로 돌아가던 소년 안데르센의 모습 말이에요. 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힘에 대해 말했는데, 완벽한 배우라고 느껴져요. 우리나라의 전기수(조선 후기의 직업적인 낭독가- 주)도 마찬가지죠. 이제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제가 전할 이야기에요. 옛날이야기는 정말 이야기 창고에요.

 

Q. 그렇다면 선호하시는 주제나 스타일이 있나요?

연극 본래의 힘을 탐구하다 보니 이상하게 이야기가 자꾸 ‘어머니’로 가요. 그리고 어머니의 주제는 바로 ‘생명’이에요. 처음 맞벌이 어머니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티브이 앞에 버려졌어요. 그 아이들이 자라서 말하는 기계를 만들고 트랜스포머 같은 작품을 만들었죠. 기계하고 더 애착을 가졌던 거예요. 엄마나 부모와 애착을 가질 시간에 기계 앞에 놓였었기 때문에 지금 ‘오케이, 지니’, ‘오케이, 구글’, 하며 기계와 말을 하는 거죠. 원시시대로 돌아가 동굴 안에 있었을 때 과연 무슨 얘기를 했을까를 상상해요. 사람에 대한 혹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사랑이지 않았을까요? 어디에 가면 사과나무가 있다거나, 천둥에 대한 이야기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흡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요. 그래서 이번에 ‘행복한 왕자’를 극장이 아니라 전시실에서 공연하겠다고 했어요. 극장에서 하면 테크니컬한 요소를 써야 하지만 전시실은 아이들에게 더 가깝게 이야기를 전달할 밀접한 공간이 될 수 있어요. 객석도 제각기 다른 의자 100개를 놓고 공연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다 다른데 획일적으로 의자를 놓을 수는 없는 법이죠. 그렇게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필요한 연민, 동정, 이웃을 바라보는 힘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런 걸 보면 전 역시 사람이라는, 생명이라는 근본적인 꿈에 집중하는구나,라고 느껴요. 작품 스타일은 지향하는 스타일이 있기보다는 작품이 원하는 스타일, 작품에 필요한 스타일로 만들어요. 최종적으로는 관객 스타일인 거죠. 고정되어 있지 않아 다행이에요.

<사진3> <사진 3> 쓰레기장에 버려진 강아지의 건강을 체크하는 망태할아버지와 이를 걱정하는 철수

 

Q. 과천시민회관 상주예술단체로서 과천에 둥지를 트신지 꽤 오래되었는데요, 작품 만드시는데 힘을 얻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이죠. 집이 생긴 거고 관객이라는 좋은 이웃이 생긴 거잖아요. 신기한 게 제가 막 인터뷰, 홍보 및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고정적으로 오는 관객이 있어요. 저희 작품에 대한 기본 신뢰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헛말을 하고 다니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제가 유명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 웃음) 제 관심은 ‘어떻게 작품을 더 잘 만들까’지 ‘어디에 홍보를 더 할까’가 아니에요. 배우들을 생각하면 더 그래요. 저야 작품을 만들면 끝이지만 배우들은 투어를 해야 하잖아요. 작품을 잘 만들어야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그러면 우리 배우들의 밥이 될 수 있고 극단을 운영할 수 있어요. 외국 가서 부러웠던 게 아이 하나에 어른 서너 명이 같이 오는 거였어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우리나라는 아이만 넣고 엄마들은 밖에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티켓 가격을 저렴하게 해서 부모들이 같이 이야기를 봐주고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부풀려진 제작비보다는 적절하고 알맞은 제작비로 만들어서 단가를 낮춘다면 관객들도 저렴하게 볼 수 있어요. 과천과 용인 두 곳에 창고가 있는데,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모아서 계속 써요. 그래서 우리 소품들은 10년, 20년 된 소품들이에요. 그런 면에서 과천에 집이 있다는 게 참 좋아요. 레퍼토리, 배우, 세트 보유 등 시스템이 되어 있으니 다른 단체들 보다 경쟁력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사실 지금도 라면 수준 밖에 안 되는 페이에요. 30년이 됐으니, 처음 온 20살 단원이 지금 50살이 됐어요. 그러니 어떻게 좋은 작품을 가지고 좋은 루트를 만들어서 함께 참여하는 단원들의 밥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많이 해요.

 

대표님과의 대화는 점점 인터뷰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좋아하는 이모님을 만나 귤을 까먹으며 진득하게 인생에 대해 나누는 대화처럼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 어떤 권위도 느낄 수 없는 대표님의 태도에서 ‘모시는 사람들’의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태도가 그대로 보였다.

 

Q. ‘강아지똥’을 얘기 안 할 수 없는데요, 저도 6살인 제 딸에게 이 작품을 읽어줍니다. ‘강아지똥’을 만드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며 각색하실 때 어디에 포커스를 두셨나요?

‘강아지똥’은 효자인 작품이에요. 제가 22살에 김우옥 박사님과 방태수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아시테지를 만드셨어요. 그때 아동극 연구가인 제인 시스칼 여사께서 하신 워크숍에 참가했는데 그걸 통해 제가 연극을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항상 아동극에 관심이 있었고, 극단 시작 후 거의 매해 아동극을 만들었어요. 관심이 있다 보니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늘 어린이 책을 봐요. 내 나이 30대 중반에 권정생 선생님이 쓰시고 정승각 선생님이 그리신 68년작 ‘강아지똥’을 만났어요. 그리고 이 책을 산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꺽꺽 울었죠. 제가 강아지똥 같았거든요. 무엇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내 모습이 흡사 강아지똥 같아서. 그래서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2000년에 시작을 했어요. 어떻게 이걸 연극적으로 만드느냐가 포커스였어요. 처음 그림자극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강아지 역을 맡은 배우가 마임과 소리를 통해 무대에 활기를 넣고, 그리고 참새가 첫 대사로 ‘더러워!’ 하는, 단계적인 연극적 구성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강아지똥이 자기를 온전히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희망이었어요. 거기에 초점을 맞췄죠.

 

Q. 올해에도 ‘강아지똥’이 인도로부터 초청을 받아 해외 공연을 가는데요, 국제 축제에 계속 지원을 하시거나, 해외 진출에 따로 힘을 쓰시나요?

고맙게도 올해에도 인도에서 초청이 와서 5개 도시 투어를 해요. 해외에는 우리가 가서 보여드린 다음 요청을 받는 순서에요. ‘몽연’도 웨일즈에서, ‘강아지똥’도 일본, 싱가포르, 케냐 등에서 요청을 받아 갔어요. ‘강아지똥’은 처음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너무 좋아서 오지 않아도 될 작품이 왔다는 평을 받았어요. 프린지 용이 아니라는 거죠. 제 작품의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는데 뜻밖에 신문에 날 정도로 인정을 받아서 마치 상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해외에 작품을 팔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해외의 기획력이 만만치 않은지라 욕망을 가지고 나간다면 상처밖에 안 될 거예요. 자연스럽게 시장에 내어놓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 다음 행로를 잡을 수 있어 좋을 뿐이에요.

 

Q. 그러면 해외 극단과의 교류나 합작을 만들고 싶으신 생각도 없나요?

그런 생각은 없어요. 해외 교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제각기 서로 잘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숨을 나누는 작업이에요. 같은 토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자라지 않은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공유하는 과정은 정말 어려워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원받는 것도 어렵고요. 다원 예술의 형태라면 언어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니 가능할 거예요. 사실 ‘쓰레기꽃’ 쇼케이스 때 외국 마케터 및 한국 마케터를 위해 주인공 아이는 영어로, 노인은 한국말로 했는데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Q. 이번에 만드신 ‘쓰레기꽃’은 주제면에서 ‘강아지똥’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세 번째로 참가한 에딘버러 축제에서 ‘강아지똥’을 객석에 앉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강아지똥’으로 이렇게 큰 덕을 보고 있는데 권정생 선생님께 보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라고요. 그래서 나온 작품이 ‘쓰레기꽃’이에요. ‘강아지똥’의 흰둥이도 나와요. 버려진 로봇 강아지 장난감을 고쳐주는 장면이 있어요. 선생님에 대한 오마주죠. 아이디어를 얻고 쓰고 공연으로 올리기까지 약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사진4> <사진 4> 엄마의 부름을 받고 집으로 가는 철수의 모습을 흐뭇하게 생각하는 망태할아버지의 모습

 

Q. 작품을 만드실 때 대본이 다 나온 상태에서 만드시나요, 아니면 배우들과 디바이징을 하면서 만드시나요?

제 희곡은 좀 달라요. 글말이 아닌 입말 중심이라서 설명이 배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전 제 희곡을 빙산이라 표현해요. 바다 위로 작은 부분이 드러나 있지만 그 아래엔 아무도 모르는 큰 부분이 있죠. 그래서 아래에 있는 부분에 대해 배우와 토론을 굉장히 많이 해요. 알지 못하면 연기할 수 없는 법이에요. 한 인물이 느닷없이 그 인물이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흉내 내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저랑 작업하는 걸 굉장히 힘들어해요. 요즘엔 흉내 내는 연극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관객들도 그런 연극을 보면 왜 저리 붕 떠 있을까, 하며 극장에 다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거예요. 사람도 다음에 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났는데 별로 재미도 없고 서로 딴 얘기해서 다음에 만나지 말아야지 하게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연극은 함께 있는 게 좋아야 하는 예술이에요.

 

Q.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찾아가는 연극을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작년에 인터뷰 했던 극단 ‘민들레’의 송인현 선생님께서 스쿨시어터에 큰 관심을 보이셨는데요, 혹시 ‘모시는 사람들’도 같이 하나요?

우리가 처음 연극을 했을 때 3년 하고 위기가 왔어요. 접자는 얘기가 나왔죠. 그래서 접는 김에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섬마을 어린이들을 위해 공연을 하자고 해서 갔는데 아이들의 대단한 응원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연극을 접으려고 했던 제가 부끄러웠죠. 그 후로 꾸준히 20년 가까이 찾아다녔고, 그다음 ‘신나는 예술여행’이란 프로그램으로 그 맥을 이었어요. 아동극은 극장 작업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여러 형태로 아이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포맷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교실 극장이나 텐트를 치고 준비하는 강당 극장 같은 포맷이요. 레퍼토리를 계속 쌓은 중이에요. 송인현 선생님의 작업을 응원해요. 당장 전화해봐야겠네요. 아동극은 학교로 가야 해요. 학교가 글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문화도 같이 배울 수 있는 공연장이 되어야 해요. 이참에 아시테지에도 건의를 해야겠어요. 아시테지가 학교 극장에 노력해 달라고요.

 

Q. 극장 얘기를 하셨는데, 아이들극장에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들극장에서 공연을 했어요. 처음엔 높이나 여러 면들이 불안했는데 실제로 공연을 해보니 아이들에게 딱 맞는 극장이더라고요. 바라는 점이라면 뒤에 어른 좌석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공연할 때 어른들이 불편해한다는 말이 있었대요. 함께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셨으면 해요. 동화는 아이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어른들에게도 좋은 힐링 비타민이니까요. 아, 밤에 어른 동화를 보여주는 건 어떨까요?

 

Q. 이번에 대상을 받으시면서 감회가 남다르셨을 텐데,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아동극의 현실에 대해 느끼시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아시테지 회원도 많이 늘었고, 이번 총회 때 한국 아시테지의 위상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좋았어요. 제가 22살에 시작했을 때 만났던 분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노력하고 계시고 후배들도 많이 있어요. 문제는 저예요. 저만 잘하면 돼요. 아까 학교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했지만, 아이들이 연극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어떻게 만들지, 또 서로 좋은 공연들을 어떻게 공유할지 같이 고민해야 해요. 아시테지에서 학교 극장 프로젝트를 해주면 좋겠어요. 회원으로서 바라는 거예요.

 

4월에 있을 ‘행복한 왕자’ 공연에 딸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상상을 했다. 극장이 아닌 전시회장에서 하는 공연은 어떨까 기대도 되었다. 한 지역에 오래 있으면서 쌓인 신뢰가 이런 것인가 싶었고, 갑자기 과천 시민들이 부러워졌다. 이야기의 근본적인 진정성에 집중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과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세를 가진 김정숙 대표님의 푸근한 미소를 보면서 예술은 결코 인간의 본질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마침 소위 ‘대가’라는 한 연출가에게서 받은 상처는 이렇게 한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연출가에 의해 치유를 받는 것 같았다.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왜 예술을 할까? 한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가?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른다면 쉬지 않고 계속 탐구해야 할 문제들이다.

  • 인터뷰어 최승연
  • interviewer 최승연

    무대 디자이너이자 아시테지의 일환인 차세대 (Next Generation) 프로그램의 초대 멤버로 활동했다. 2009년 남편과 함께 '체리티 트레블 (Charity Travel)'이란 독립적인 세계 자원봉사 여행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그 후 7년간 공동체 생태 마을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마드로 살았다. 현재 한국으로 돌아와 5살 된 딸을 관찰하며 자신의 여행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는 '착한 여행 디자인'과 '노마드 베이비 미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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