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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어린이청소년극을 왜 만드는가 - 손준형
작성자 : 브라이어스 등록일시 : 2017-04-28 조회 : 9606

‘나는 왜?’ 라는,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혹여 신변잡기나 일방적 질문에 그치지 않도록, 어린이청소년극을 수년간 해 온 창작자 몇 분과 같은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 글은 그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2017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지금,

2017년도 필자가 속해 있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분주하다.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에드몽드 로스탕 ‘시라노’ 원작, 김태형 각색, 서충식 연출), 말들의 집(박춘근 작, 김현우 연출), 아는 사이(황나영 작, 김미란 연출) 3편의 청소년극 공연을 제작중이며, 지방공연, 1인극 창작실험/보급, 청소년극 작가 발굴/창작희곡 낭독공연, 시를 테마로 청소년과 예술가의 공동워크숍/쇼케이스, 국립극단 청소년17인과 협력학교 운영 외 청소년극 관련 연구서 발간, 번역 등 사업 영역만으로는 ‘예술위원회(?)’ 못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소장을 포함한 4명2)이 매달, 매주 다종다기한 일정과 작업으로, 수많은 배우, 연출가, 창작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분주한 것일까?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연극이라는 예술 분야에서, 특히 어린이청소년극을 연구하고 만드는 일에서, 왜? 라는 질문은 작업의 출발점이자 마침표이다. 지난 6년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경험과 인터뷰를 토대로 몇 가지의 이유를 짚어보고자 한다.

좋은 연극 / 새로운 세대와 만남 / 사회적 확장

첫째, 필자를 포함한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청소년 시기에 ‘좋은 연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우선 청소년극 공연과 작품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근 미디어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폭발 속에서 연극이 청소년들로부터 언제까지, 어디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더 좋은 연극을 선보이고, 더 잘 만드는 길만이 우리의 연극, 미래의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을 창설하고자 했던 초심에는 이러한 ‘사명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둘째는 새로운 세대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몸의 변화, 영감, 고뇌, 미래에 대한 예감이 충만한 사춘기 ‘인류’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 연극에 현대적인 감각과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이렇듯 새로운 세대, 새로운 감각에 대한 연구소의 관심은, 현재에도 계획한 모든 공연제작 및 작품개발 과정에 청소년 그룹이 참여해서, 응원/공감/비평/리서치를 함께 하는 ‘이유’이다.

셋째는 어떻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3)의 창단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청소년극 경험을 축적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창작자, 배우, 교사와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은 연구소의 핵심 전략이었다. 최근 청소년극 오디션에 300-400명의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작은극장을 통해 독립적인 공연예술가로 창작활동을 하는 20인 이상 핵심 배우그룹이 생겨났다. 지난 5년간 청소년극 희곡공모에는 100명 이상의 작가들이 참여했고, 젊고 참신한 연출가들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한국교사연극협회(회장 조용천)와 전국교사연극모임(회장 백인식) 등 교사들이 국립극단 청소년극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도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특히 지역과 밀착된 초등학교 4학년- 6학년을 대상으로 한 표현교육 추진사업, 초등학교 강당에서 실시하는 체험형 워크숍인 학교 출장 연극 워크숍을 통해 연극을 통한 지역사회 기여에 많은 힘을 기우리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질문과 결과는 국립극단이라고 하는 공공의 투자와 자원에 기반한 것이다. 여전히 국립극단의 역할에 비추어 미진한 과제들이 있고, 어린이청소년극 분야에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더 해야겠지만, 이것이 어린이청소년극을 하는 이유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주 세 분의 창작자(연출가,무대미술가,작가,배우를 넘나드는)를 만났다. 예술무대 산의 조현산 대표, 극단 하땅세 윤시중 연출, 성씨어터라인(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장)의 김성제 연출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외 한국교육연극학회 춘계 학술대회(4.15)는 그 시야를 홍콩과 싱가폴 등 아시아 차원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분들의 이야기에서, 공공성과 사명감을 넘어서서, 필자를 포함한 우리가 어린이청소년극을 만드는 궁극적인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작은 것에 대한 경이 : the art of being 'little'4)

‘지나치게 화려한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조명 하나만 가지고 볼 수 있는, 어린이들이 작아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볼 수 없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개구리 왕자>가 태어났지요’ - 극단 하땅세, 윤시중

‘오래 전이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프랑스 샤를르빌 축제에서, 길거리의 한 배우가 사람들에게 다가가 줄을 건네요. 두 사람 사이 줄이 있고, 그 위를 아주 작은 인형이 걸어가요. 단 몇 분, 바이올린 연주가 흐르는 동안, 그게 다에요. 작은 것에는 특별한 상상의 매력이 있어요’ -예술무대 산, 조현산

극단 하땅세와 홍콩의 연극교육포럼(TEFO) 한 아동극단의 즉석 업무협약식이 있던 날, 필자 역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윤시중 연출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홍콩 멤버는 본인들 작업 이유를 <작은 존재의 예술_the art of being 'little'>이라고 소개했고, 윤시중 연출은 첫 어린이극 연출작의 동기를 ‘조명 하나, 아주 작아서 집중해야 하는’ 공연을 하고 싶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순간 국립극단 ‘작은극장’ 작업이 오버랩되면서, 묘하고 기분 좋은 공감이 이루어졌다. 조현산 대표의 말처럼, 작은 것의 예술은 어린이의 신체적 크기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세계, 작은 만큼 사람의 상상력이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연극이 주는 경이로움이 아닐까?

변화를 향한 열망

90년대 <줄리아를 C코드로>라는 청소년극을 한 적이 있어요. 락그룹 ‘줄리아’ 내한 콘서트장이 붕괴되면서, 그 곳에 갇힌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당시 저에게 청소년은 10대부터 20대, 30대 초반을 아우르는 새로운 세대였고, 그들의 열망과 절망 속에서 어떻게 ‘자기’를 직면하는지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어쩌면 지금도 90년대 그 생각 이상을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아요.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김성제 소장/연출

공연 중에 부모와 아이, 배우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그 트라이앵글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매주 토요일 부모동반 30명 관객만을 위한 공연을 해요. 수지타산 생각하지 않고, 차도 드리고, 공연 후에도 극장에서 특별한 시간을 같이 보내요. 요즘은 그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도 아는 것 같아요. 작은 문화를 만들어간다고 할까요? -극단 하땅세 윤시중 연출

어린이청소년극은 특히 변화에 민감하고, 질문을 제기한다. 위 두 연출가 이야기에서, 어린이청소년극이 새로운 세대, 문화의 등장이라는 사회적 변화와 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되돌아보자면, 90년대 김성제 연출이 말하고 있는 10대에서 30대 초반을 아우르는 청소년(젊은) 세대의 이야기는 ‘학제와 미성년’이라는 구조화된 프레임에 막혀 제대로 연극적 이슈와 담론으로 표출되지 못했고, 가족 단위 관객층 증가 역시, 일본의 시민단체 어린이극장(고도모 게키조)과 같이 상호 지지, 협력, 학습과 확산 등 역동적인 소통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가족극 장르의 개별 소비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렇듯 변화를 향한 열망으로 시작했으나, 변화를 주도하거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현실은, 어린이청소년극 창작자들에게 짙은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현실로 인해, 그와 같은 열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 4> 여우야 뭐하니 극단 성씨어터라인

몸, 시간의 재발견(?) : 세대를 가로지르는 예술

어린이청소년극의 최대 딜레마는 성인이 어린이청소년의 역할을 하거나, 그들의 경험을 대변해서 창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극에서 성인 배우가 청소년을 연기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청소년이 굳이 청소년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을 특별히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좋은 연극은 청소년이건, 성인이건 모두에게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다. 영화처럼 청소년 인물은 청소년이 직접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 배우의 청소년 연기, 50대 배우의 어린이 연기, 70대 연출가/극작가의 어린이극 창작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황하영 연극원 교수는 싱가포르에서 ‘잊기 그리고 기억하기’ 프로젝트로 50대 이상 중국계 노인들과 작업을 한 바 있는데, 그들과 유년기 놀이를 하는 순간, 영어를 공용어로 쓰던 참여자들 안에서 또 다른 언어와 삶의 풍경이 쏟아져 나왔고, 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의 자취에 관한 성찰적 질문을 이어갔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5). 노인이 어린이가 되면서, 몸의 시간을 되돌렸던 작업, 황하영 교수가 싱가포르에서 한 연극작업은 노인들의 작업이기에 어린이청소년극과는 별 관계가 없을까?

또한, 2016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에서는 What are they like?(루신다 콕슨 작) 라는 영국 국립극장 내셔널커넥션 선정 희곡을 번역해서 한국 청소년들이 낭독 형태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은 청소년이 직접 출연하는 희곡으로 씌어졌지만, 청소년 등장인물은 한 명도 없고,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만 등장한다. 다시 말해, 청소년이 연기하는 부모의 입을 통해 청소년을 이야기하는 특이한 작품이다. 청소년과 성인, 배우와 역할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중적 연기, 시각의 교차 및 중첩이 주는 묘한 재미와 감동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사진 5> 달래이야기 예술무대 산
 

혹여 어린 시절이, 성인의 몸 어디에선가 함께 숨 쉬고 있으며, 어린이청소년의 행동에도 30대 부모와 60대 할머니의 몸이 바코드처럼 반짝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어린이청소년극이라는 몸 위에 작동하는 특별한 ‘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으로 남겨둔다.

 

1) 필자는 국립극단에서 어린이청소년극을 연구/개발/공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주로 청소년극 관련된 작업이지만, ‘작은극장’의 배우를 통해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주민/동료 관객과 만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2) 2017년, 4월 현재,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멤버는 소장 김성제, 피디 김미선, 연구원 손준형, 연구원 윤원혜, 연수단원 이지은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최영애 외, 「어린이청소년에게 문화를 미래를 돌려주자-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설립을 위한 연구총서」, 국립극단, 2012

4) Kalvin Chan, Littlesmudgesttheatre in Hong Kong

5) 황하영, 「연극교육을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관점에 대한 몇 가지 단상 : 영국과 싱가포르에서의 경험 사례를 중심으로」, 2017 한국교육연극학회 제32회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p37-52

  • 인터뷰어 조경환 재단법인 과천축제 상임이사 겸 사무처장
  • writer 손준형

    현, (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연구원, 아시테지 한국본부 회원, 한국교육연극학회 이사
    전, 연극놀이터 해마루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선린중학교/조현초등학교 등 다수 연극수업, 어린이를 위한 판소리극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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