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정 국궁전시관

국궁 문화
1번지

1922년 일제강점기에 옛 등과정(登科亭) 터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으며
1974년 황학정은 국내 유일의 활터 문화재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황학정 국궁전시관 내부 전시 사진입니다.
  • 황학정 국궁전시관 행사 사진입니다.
1전시실 내부 모습

우리 민족의 국궁 문화

국궁이란 한민족의 전통적인 궁술이자, 궁술에서 사용하는 활을 일컫는 말입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동쪽에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 하여 동이족이라고 불렀습니다. 활쏘기는 일정한 거리에 과녁을 세워 놓고 활을 쏘아 맞추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 놀이였습니다. 예로부터 활쏘기는 ‘사예’라고 하여 사대부가 반드시 익혀야 할 무예의 하나로 인식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활쏘기는 전국의 사정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2020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우리나라 활의 우수성

선사시대부터 사용된 활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사냥도구이며 무기입니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활을 중시하였으며 화약무기의 출현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전투 무기였습니다.
과거에는 10여 가지의 활이 존재하였지만, 현재 제작 기법이 전수되는 것은 각궁 하나뿐입니다. 각궁은 고구려의 맥궁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통적인 합성궁으로 대나무, 참나무, 산뽕나무, 벚나무 껍질, 물소뿔, 소 힘줄을 민어 부레풀로 접합하여 만들었습니다. 각궁은 작고 가볍지만 탄력이 강하면서 사거리가 깁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2전시실 내부 모습

각궁

전통 활 ‘각궁’은 천여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각궁의 중요한 특징은 ‘구조의 변형’입니다. 동그랗게 구부려져 있던 활을 반대쪽으로 뒤집어서 시위를 걸어야 탄력이 높아져서 화살이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잇습니다. 활을 만들기 위해서 대나무와 참나무, 산뽕나무, 물소 뿔, 소 힘줄, 벚나무 껍질, 민어부레 풀 등 7가지 재료가 사용됩니다. 모든 재료가 결합되었을 때 각궁은 300m 이상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각궁을 만들다

활을 만드는 최적기는 일년 중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입니다. 활의 재료로 사용되는 민어부레풀은 습기가 많고 기온이 높은 계절에는 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완성된 활을 관리하는 데에도 습기가 있어서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궁의 제작과정은 복잡하며 그 보관방법도 까다롭습니다. 각궁은 습기를 피하여 늘 건조한 장소에 보관해야 하며, 여름에는 30~34℃, 겨울에는 27~30℃의 온도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3전시실 내부 모습

고풍

고풍은 정조의 1792년 12월 27일의 활쏘기 성적을 규장각 검교제학 오재순이 기록하여 올린 것입니다. 이날 정조는 장혁(손바닥만 한 과녁) 1순에서 4시를 적중하여 5분을 득점하고, 이후 유엽전 20순에서 98시를 적중하고 153분을 득점하였습니다. 특히 1순 5시를 모두 관에 적중시킨 것이 2회임을 별도로 강조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조는 총 50시를 쏘는 10순 활쏘기에서 관례적으로 1발의 연시(쏘지 않고 남기는 화살)를 두었는데, 이는 「계사상전」의 ‘대연수’에 근거한 것입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왕과 신하의 궁술 시합, 대사례

조선시대에 활쏘기는 예(禮)와 악(樂)을 연마하는 수단이자 정신 수양 도구로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사(禮射) 유교적인 윤리를 보급하고 군신 및 사대부의 친목 도모를 위한 활쏘기 행사였습니다. 사례는 중앙의 대사례와 지방의 향사례로 나뉘며, 민간의 경우는 마을과 마을, 활터와 활터 사이에 편사가 주로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궁술 시합은 연중행사로서 일정한 시기를 정한 정기적인 모임으로서 발전하였습니다. 성종 8년에 개최된 대사례의 경우 국왕과 신하가 성균관에서 석전제를 올린 후, 활터에 나아가 술을 마시고 두 명씩 짝을 지어 각자 네 발의 화살을 쏘았습니다. 현재는 영조 19년(1743년)에 열린 대사례의 의식 절차와 성황을 모두 수록한 《대사례의궤》 한 권이 남아있습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3전시실 내부 모습

근대 국궁의 탄생

황학정은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건립된 활터입니다. 1899년, 고종황제는 ʻ비록 활은 군대의 무기에서 제외되었으나 국민의 심신단련을 위한 활쏘기는 권장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윤음을 내리고 황학정을 건립하여 민간에 개방하였습니다. 무기로써 역사적 수명을 다한 우리 활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신체활동이자 문화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경희궁 회상전 북쪽 기슭에 있던 황학정은 1922년 지금의 자리이자, 옛 서촌(웃대) 지역 5개 사정중 하나인 등과정 터로 이건하였습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국궁1번지, 황학정

1922년 7월 11일,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산 1번지 황학정에서 발기인 35인으로 『조선궁술연구회』가 창립되었습니다. 1926년에 『조선궁도회』, 1946년에 『조선궁도협회』로 개칭하였습니다. 『조선궁도협회』는 현재 『대한궁도협회』의 전신입니다. 1966년에 협회 사무국을 서울시 무교동 19번지 대학체육회관으로 이전할 때까지 44년 동안 황학정은 우리나라의 국궁을 지도해온 본산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시 해설(한국어)

Exhibition commentary(English)

준비중입니다.
쿠키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이거나 브라우저 설정에서 쿠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 사이트의 일부 기능(로그인 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