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 타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희망봉’이었다. 오래전 세계사 시간에 배운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 대항해 시대에 망망대해인 대서양 남단을 지나 인도양으로 들어서는 초입을 알려주는 이 지명이 주는 어감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왠지 모르게 ‘희망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고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버켓 리스트였었다. 그 후 희망봉은 ‘넬슨 만델라’와 ‘월드컵’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3년 마다 벌어지는 아동청소년 연극인들의 최대 잔치라고 할 수 있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이하 아시테지) 세계총회가 열린다고 하니, 하늘길만 해도 24시간이 넘는 거리이지만 큰 고민 없이 대장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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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서 제19회 아시테지 세계총회와 아동청소년공연축제 “창의의 요람(Cradle of Creativity)”이 열렸다. 인류의 기원과 이를 키워낸 ‘요람’이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고고학, 인류학적 증거들 때문인지 아프리카에서 처음 열리는 아시테지 총회와 그 축제 제목으로서는 상당히 절묘한 네이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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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회에 종로아이들극장 예술감독인 김숙희 아시테지 한국본부 이사장을 비롯하여 방지영 부이사장, 박주희 이사 그리고 필자가 아시테지 한국본부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번 축제의 공식초청작인 극단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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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번 아시테지 축제 “Cradle of Creativity"는 아프리카에 의한, 아프리카인의 축제였다고 할 수 있었다. 50편이 넘는 공식초청작을 비롯하여 프린지 작품을 포함하여 총 63편에 달하는 작품 수만 보더라도 축제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개최되는 축제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남아공 작품들(17편)과 아프리카 작품이 선보였고, 또 상당한 수의 작품이 유럽의 단체와 협업을 통한 작품들(16편)이었다. 그동안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아프리카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 축제가 현재 세계 아동청소년연극의 경향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총회 참석 때문에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축제의 작품들을 전반적으로 논하긴 솔직히 어렵지만, 주변의 반응들을 귀동냥 해보면 이들 아프리카 작품들은 전통적 형식을 깨는 미학적 시도가 앞선 작품보다는 그들의 장점인 전통적 움직임과 소리를 바탕으로 한 파워풀한 춤과 소리 그리고 노래 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 내용 또한 많은 부분이 ‘억압’ 과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한편 극단 브러쉬는 현재 우리 아동청소년극단 중 가장 해외 진출을 활발히 하는 단체 중 하나인데, 이번 <야오 야오>공연도 현지 관객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더구나 많은 해외 델리게이트의 관심을 끌어, 이후 미국, 중국 공연 등 협상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이번 축제에 눈에 띠는 프로그램은 "Cultural Hubs"가 아닌가 한다. 케이프 타운 시내가 아닌 차로 15분에서 1시간 거리의 지역 커뮤니티에서 공연,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으로 하루 또는 반나절 진행되었는데, 마치 동네 축제 같은 성격으로 남아공 지역의 상황과 문화를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동청소년 연극을 단지 공연장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마치 Community Cultural Development의 현장 속에 용해된 모습으로 느끼게 한 것이다. 이는 이번 축제의 포커스 세션 주제인 ‘스토리텔링’, ‘사회적 변화를 위한 공연’ 등을 다루는 데 적절한 환경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런 점이 그 전의 아시테지 축제 프로그램과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축제에서 아쉬웠던 점은 거리상의 문제인지 모르지만, 유럽을 제외한 타 대륙의 작품이 적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아시아의 작품은 한국과 중국, 레바논의 각 1편 뿐 이었고, 일본, 인도 등의 작품은 전무했다. 아시아에서 어린이 연극의 전통적 강국인 일본 작품이 없었다는 것은 현재 일본 아동극의 침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 아마도 일본이 이번 총회를 통해 2020년 아시테지 세계총회를 유치한 것은 이런 침체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아시테지 총회는 지난 3년간의 활동을 리뷰하고, 새로운 임원진(회장, 사무국장, 이사진) 선출을 통해 앞으로 활동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며, 또한 차기 총회 및 Artistic Gathering (총회가 있는 해를 제외하고 연 1회 회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축제) 개최지를 정하는 것이 주요 의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회는 축제와 더불어 아시테지 활동의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남아공 총회는 우리 한국본부에게도 남다른 행사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는 점, 한국 공연단체가 공식 초청되었다는 점 말고도 필자가 한국본부의 추천으로 세계본부 이사에 출마하였기 때문이다. 과거 김우옥 전 이사장과 최영애 연극원 교수가 세계본부 이사로 활동하면서 부회장까지 역임하였지만 최근 6년 동안 한국은 이사 배출국이 아니었다.
세계 아동청소년연극계에게 아시아가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고, 그동안 한국이 이를 견인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해온 입장에서 아시아 권역에서의 좀 더 적극적 활동을 위해 한국이 이사 배출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본부의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숙희 이사장님의 그간의 노력과 이사진의 성원 그리고 두 분 전임 세계이사님들의 레거시 등등 덕에 세계아동극 무대에서 ‘뉴페이스’인 사람이 세계본부이사로 당선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많은 도움과 성원을 보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더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 총회가 가까운 일본에서 개최되는 만큼, 보다 많은 우리 공연단체와 아동청소년연극인들의 참여를 통해 우리 공연의 우수성을 알리고 아시아 아동청소년연극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 기회가 되길 기원해본다.
현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전문위원,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이사,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세계본부 이사
전 구로문화재단 공연사업팀장, 아시테지 한국본부 사무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