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흑백사진 속, 수십 명의 아이들이 보입니다. 어떤 아이는 귀를 막고 있고, 어떤 아이는 입을 막고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서로 기대어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일어서서 팔을 뻗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굉장한 일이 일어났나봅니다. 그런데 모든 어린이들이 놀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이 상황에 빠져들어 즐기고 있는 눈빛과 미소들이 생생하게 엿보입니다.

이 곳은 1963년 프랑스 파리, 작은 야외극장에서 펼쳐진 인형극에서 주인공인 용감한 세인트 조지가 악당 드래곤을 물리치던 바로 그 장면을 LIFE지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아이젠슈타트(Alfred Eisenstaedt)가 포착한 것입니다.

<사진 1> Children at a Puppet Show, Paris ©1963 (Alfred Eisenstaedt)

그 사이 TV와 컴퓨터, 스마트폰 등 다양한 매체가 발달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도 많아졌지만 이렇게 현장감 있는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동극 외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동극이 아이들에게 왜 필요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조금만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자체가 이미 연극적인 활동으로 가득 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아기에서부터 초등학교까지 가장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소꿉놀이에서부터 인형놀이, 영웅놀이까지 무대를 만들고 연출을 하고 연기를 합니다. 아빠엄마가 되기도 하고, 토끼, 호랑이, 공룡이 되기도 하고, 시장상인에서부터 소방관까지 하루 종일 다른 누군가가 되고 다른 무엇이 되면서 관계를 맺고 사건을 펼치고 문제를 해결해나갑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연극놀이의 대상이 되어주느라 누구나 귀찮은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연극을 즐기는 아이들이 공연장에서 전문 아동극을 즐긴다는 것은 성인이 공연을 관람하는 것보다 많은 가치를 가집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아이들의 뇌발달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두엽의 역할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 그러니까 교감, 공감력, 사회성, 애착, 감정, 도덕성, 인내력, 회복력 등에 관여하는 만큼 아이들이 이 시기에 본능적으로 역할극을 하고 아동극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신이 기막히게 인간을 프로그래밍 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전두엽의 발달은 삶의 질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유년기 문화예술 교육 경험이 문화예술 참여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구은자, 2011)’은 어린 시절부터 문화예술을 가까이서 경험하는 것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유년기에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고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기는 친숙한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30, 40대가 되었을 때 여전히 공연, 전시를 관람하며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와 삶의 질이 매우 높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예술적 환경과 경험이 단순한 취미생활로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삶을 만드는데 중요한 동인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아동극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삶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데 그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수많은 갈등과 사건사고들이 나타나고 결국 그것을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긴 인생의 여정에서 이제 겨우 아침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모든 삶을 경험하는 것은 위험하고 또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동극은 수많은 인물과 갈등의 내러티브를 통해 삶의 다양한 면들을 만나고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GRIT : Self Control (The Duckworth Lab of University of Pennsylvania, 2007'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성적에 있어 IQ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인내심이라고 합니다. 인내심은 불확실성 속에서 얼마나 자신과 환경을 믿고 견딜수 있느냐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공연관람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방식을 미리 예측하고 만나볼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1시간여의 공연관람 시간동안 안전하게 다른 이의 삶과 갈등을 경험하고 그 끝에서 만나는 삶에 대한 신뢰와 통찰을 키워주게 됩니다.

세 번째로 아동극은 전달하기 어려운 보편적 가치와 내용들을 교육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공연으로 무엇인가를 꼭 가르쳐야 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아동극은 필연적으로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편식예방이나 성교육과 관은 메시지에서부터 강력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국 용기와 희망에 관한 것 등, 그 어떤 아동극도 반사회적이거나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시기에 아동극은 본능으로 연극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전달매체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말로 했을 때 잔소리가 되는 내용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철학적, 도덕적 내용이 캐릭터와 사건을 만나면 쉽고 재미있게 전달됩니다. 공연을 보고난 뒤 아이들이 양치질을 잘 한다든가 혼자 잘 수 있을 만큼 용감해졌다는 부모님들의 후기가 이러한 가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공연에 있어 유희적 역할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연극이나 콘서트를 보는 목적은 유희에 있으면서 아이들이 공연을 보는 것에 있어 자꾸 무엇인가 배우고 얻기를 바라는 것은 아동극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옳은 방향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어린이 공연에서 구매자와 사용자의 선호요소 차이에 관한 연구 (김태희, 2014)’ 연구조사에서도 부모들이 아동극에 기대하는 목적이 교육적, 교훈적 목적인 것에 반해,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처럼 공연을 통해 재미있고 즐거운 유희적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입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아동극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효용과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아동발달과업에 있어 주어진 당연한 본능이자 인간이 지향하는 유희적 가치와 맞닿아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아동극은 비단 아동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필요합니다. 프로이트는 퇴행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스포츠나 예술활동을 통해 원초적인 자아를 드러나거나 연애할 때 서로 아이처럼 굴며 애교를 부리거나 하는 퇴행적 활동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극장에 와서 아이들만 들여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어른들이 아동극을 관람하면서 더 큰 감동과 위로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 2> India Tsunami Recovery ©2005 (Ami Vitale)

서두에서 공연을 보는 아이들의 사진으로 시작한 것처럼 글의 마무리도 휴머니즘 사진작가인 에이미 비탈레(Ami Vitale)의 아이들 사진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2005년 8월, 쓰나미로 수천명이 사망한 인도 타밀나두 지역에서 유니세프가 아이들의 사회심리적 건강의 회복을 위해 진행한 인형극을 아이들이 즐겁게 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두 작가 모두 공연의 장면이나 무대를 찍지않고, 렌즈는 오히려 아이들을 향하였습니다. 아동극은 아동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얼마나 멋진 무대로 어떤 연출가가 만들었는가보다 아이들의 표정과 눈과 그로부터 오는 성장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고 어두운 극장에서 아동극을 보는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이 아이들의 뇌 속에서 가슴 속에서 어떤 폭죽이 터지고 어떤 울림이 퍼져나갔는지 조금이나마 보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아동극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