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그러하게 폭염을 버티는 와중, 유독 활기찬 에너지를 만나게 되었다. 빛나는 머리칼로부터 흘러나오는 매력과 의지가 느껴지는 다부지고 훤칠한 사람이다. 첫 인사. 그리고 무용위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수줍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용납하기 힘든 더위에 방문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이를 대처하는 깔끔하고도 쿨한 자세가 느껴진다. 대화상대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잠깐의 숨으로 자연스레 이야기의 전환을 유도한다.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8월에 기획공연 <진짜,고래?>를 올린 라룸베 무용단(Larumbe Danza)의 대표 후안 라룸베(Juan De Torres Larumbe)씨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Q. 우선 본인이 이끌고 있는 단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 볼게요.
A. 라룸베 무용단의 시작을 이야기하는데 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제 어머니도 무용을 하셨습니다. 벨기에에서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zart)와 함께 조안무 혹은 리허설 디렉터로서 활동하셨고 그러던 중에 오롯이 본인의 예술관과 철학이 담긴 작업을 지속하고자 단체를 설립하시고 본인의 작업을 하셨죠. 저 또한 어린시절부터 어머니 주변의 무용인들 예술가들과 함께 지낸 기억이 여태까지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되네요. 어머니의 활동을 지켜보며 이를 함께했기에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더 이상 단체를 이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바탕으로 라룸베 무용단으로 새로이 발돋움 할 수 있었어요. 어머니 나름의 예술과 무용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무용이 대중과 사회를 마주하였을 때의 신념, 구체적으로는 무용 그리고 움직임 자체를 구현하는 테크닉까지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생각합니다. 물론 있던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특색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지켜내며 내가 속한 사회와 환경에 맞게 변화하려는 노력이 라룸베무용단을 지속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Q. 무용단이 어떠한 방식과 원칙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좀 들어 보고 싶어요. 또 이를 유지하고 지속할 수 있는 특별한 본인만의 방식과 노하우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A. 저희 무용단은 스페인 마드리드 외곽에 위치한 7개 무용단체들 중의 하나에요. 이곳을 기반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며 프로덕션의 지속가능성과 사람들과의 소통, 무용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무용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은 무용에 대한 경험치를 제공하고, 각각의 다양한 취향과 니즈에 따른 다채로운 요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무용인들이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특히,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계층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무용관련 프로그램이나 교육들을 제공하고, 춤이 그들의 삶에 깊이 스며들길 희망하죠. 어떤 식으로든 무용이 그들의 삶의 부분이 되도록,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스페인은 무용이 다른 예술장르나 컨텐츠에 비해 대중들의 선호도가 높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르의 특성상 혹은, 사회적 역사적 환경때문인지, 제가 느끼는 스페인의 현대무용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범주는 매우 한정적이에요. 즉, 끼리끼리 한다는 말이죠(웃음). 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궁극적으로 해결하려 고민하니 작품 활동을 할 때 관심분야가 달라지고 단체를 이끌어가는 방향성이 더 구체적이 되는 것 같아요.
Q. 작업들이 무대에서 영상의 사용이나, 미디어의 활용이 특화된 방향성을 추구하는 것 같은데, 이번 <진짜, 고래?> 뿐 아니라 아시테지여름축제에서 선보인 <큐브이야기>도 미디어가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기술과의 협력은 무용단에서 어떤 의미이고 아이들에 대한 작업이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연관을 찾아 볼 수 있나요?
A. 2000년에 들어서 영상과의 협업을 통해 작업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상이 작품 속의 오브제 이상의 서사로써의 역할을 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니 무용단의 작품 특색이 구축된 것 같아요. 기술과 협력하며 프로덕션을 이끄는데 재정적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는 지가 항상 큰 과제이고 고민입니다. 원하는 장면을 실현해내기 위해 갖춰야하는 장비들은 차 몇 대를 살 수 있는 돈과 맞먹으니까요(웃음). 무용단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아내 다니엘라는 기술을 사용에 대해 초반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움직임과의 조화를 깊이 고민하여 잘 활용하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원활하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작업에 활용하고 그 안에 녹아들어 움직임과 하나가 되어 전개되는 작품들을 제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단체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구체적으로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아이들과의 소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동안 현대무용을 봐오던 관객들만 염두에 둔,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무용공연으로는 공감의 척도를 확장시키기는 부족했죠.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움직임을 매개로한 경험과 노출이 많아진다면, 그들의 삶에 무용이 친근하게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나중에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어떻게 무용을 만나야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Q. 어린이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해 자극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예술인들이 항상 지녀야할 덕목인 것 같아요. 이번 아이들극장과의 협업을 통해서 새롭게 느끼시거나 그 과정에 대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A. 재작년부터 <진짜,고래?>로 매년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특히 작년과 올해 한국에서의 관심과 인연을 바탕으로 종로 아이들극장과의 협업을 지속 할 수 있었죠. 작품이 시연되는 페스티벌의 성격과 극장의 특성, 관람하는 아이들의 연령대 및 성향에 따라 매번 공연마다 감동의 순간과 분위기가 달라져요. 이번년도 공연이 작년과 다른 시즌이라 그런지 관객의 연령층이 달랐어요, 그래서 역시 같은 극장에서 미묘하게 달라진 작품의 퀄리티를 발견할 수 있었죠. 이번 방문 때 아시테지의 김숙희 이사장님과 문화권 따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들, 아동공연예술에 대한 신념들을 이야기 나누다가, 아이들극장이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관리하는 극장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어요. 극장자체의 하드웨어부터 작품의 기획 또는 제작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한다는... 공연예술 컨텐츠에 노출되는 어린관객들이 나중에 더 건강한 공연문화를 만들고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신념이 극장시설과 환경만큼 좋다고 생각했어요. 매우 부러운 환경이지요.
Q. 이번 작품 <진짜,고래?>에서 특별히 고래가 주인공이 된 이유가 궁금해요. 점점 사막화되고 병들어가는 지구의 환경에 대해 바닷 속의 고래를 통해 전달하려 하신 것 같은데요. 작품 제작의 과정에서의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A. 일단 이 작품은 멕시코의 예술단체 펜들로 세로와 사전기획을 진행하였고, 기금을 위해 같은 언어권의 칠레, 우르과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단체들과 함께 제작했어요. 범국가적인(?) 프로덕션을 꾸려 본거죠(웃음). 사전기획에서 보편적인 관심사를 찾으며, 환경오염이나 자연재해를 두고 이야기 나누던 중에, 이를 바닷 속 이야기로 전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특히 단체 펜들로 세로가 있는 지역의 인접 바다 이야기가 꽤 인상적이었죠. 그곳은 고래가 새끼들을 낳아서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자라는 곳인데, 그곳의 이야기를 통해 얻은 고래에 대한 인상 때문인지 소재가 되면 좋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년 동안 고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죠. 예를 들면, 서식하는 방식, 움직이는 습성들, 문명의 잣대로 보여지는 고래들 등...
고래의 영상제작에서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 캄캄한 그 어두움 자체를 표현하는데 아이들에게 어떠한 상상력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까 고민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남네요. 깊고 깊은 어둠의 깜깜함은 결국 어두움을 밝히는 별의 존재로 표현하였지만, 이를 어떻게 전달하고 효과적으로 담아야할지 오랜시간 고민 나누었어요.
Q. 혹시 그 별이 고래가 죽어서 된 별이라고 받아들여도 될까요? 혹시 스페인에서도 죽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는 개념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A. 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니에요. 그런 개념이 있는 문화권에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기는 하겠지만, 사실 그러한 의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해석의 여지가 있을 것 같네요.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Q. 본인만의 움직임 철학이나 무용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은데요. 너무 광범위한 이야기지만 편하게 얘기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것이 꼭 무용에 관련되지 않은 본인의 철칙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A. 저는 무용 혹은 움직임에 대한 트렌드에 관심을 두지 않아요. 움직임은 그 자체 존재로 의미가 있어 삶 자체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좋든 나쁘든 간에, 움직임 자체로 진실되게 다가가려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유행이라는 것을 쫓을 필요성을 못 느끼죠. 진심이 있으면 결국에는 통하는 것 같아요. 움직임을 통해 느끼지 못하고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하죠. 본 작품의 장면, 3D영상이 나오기 전 부분을 보면 그 자체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상황과 관계를 전달해요. 핸드폰만 바라보는 여성과 이를 일깨우는 남성과의 행위를 통해 은유적으로 직접적인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가상의 삶 혹은 매체를 통해 보여 지는 세상은 실제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거죠. 저 자체도 기술과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일부는 그곳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지만, 직접 부딪히는 현실에 대해 외면하고 웹상의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실제 삶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으로요.
Q. 첫 장면이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관계와 의미를 느낄 수 있고 명확해서 인상적으로 보았어요. 재미있었고요. 그런데 그 안에 그러한 심오하고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다시한번 그 장면을 되 내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창작자를 통해서 들을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A. 제가 무용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춤 혹은 공연이라는 매개로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안무라는 것은 아이디어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그것을 실행하고 협업을 통해 구현하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소통이죠. 저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통해 얻은 결과물의 힘을 믿어요. 그것의 원천에는 몸과 움직임 있는 것 같구요. 또한, 저를 인터뷰해러 와 주신 보람씨 역시 직접 보고 소통하며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사진제공 : 종로문화재단, 라룸베 무용단 홈페이지(www.larumbedanza.com)
서울을 기반으로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 중이며, 최근 본인의 시각을 안무작으로 표현해 지금까지의 기회와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작업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아동예술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수용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