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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이들에게 어떤 아동극이 필요한가 - 김태희
작성자 : 브라이어스 등록일시 : 2018-04-12 조회 : 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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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물건이나 서비스를 고르는 부모의 눈은 냉철합니다. 안전을 책임지는 카시트에서부터 매일 사용하는 물티슈까지, 아이가 입학하게 될 어린이집에서부터 동네 마트의 문화센터 수업까지, 부모는 내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주기위해 수많은 리뷰를 읽고 가성비를 비교하여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한번 씩 혼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들이 간혹 있지요. 유해한 성분이 얼마나 있는지, 좋은 프로그램이 얼마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바로 어린이공연과 같은 것입니다.

 

어린이공연의 리뷰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어떤 리뷰에서는 아이가 그저 많이 웃고 즐거워해서 너무 좋은 공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리뷰에서는 공연이 진지하고 어두워서 좋은 공연이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어떤 리뷰에서는 캐릭터가 나와 좋은 공연이라 하고, 또 어떤 리뷰에서는 캐릭터가 나와 오히려 좋지 않은 공연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 나쁜 공연은 어떻게 구별하고 또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쁜 아동극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동에게 일부러 해를 가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공연을 만드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든 아동극은 장르와 형태에 따라 각각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내 아이의 연령과 상황에 따라 적합한 공연과 그렇지 않은 공연이 끊임없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유아기에는 처음 만나는 공연의 경험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내용과 상황을 모두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것이 안전한 느낌이인가 아닌가, 나에게 우호적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게 됩니다. 한번 입에서 미끌거렸던 오이를 평생 먹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3~5세는 새로운 상황이나 사물에 대해 쉽게 포비아(두려움)를 갖게 되는 시기입니다. 연령이 어리다면 무조건 남들이 좋다는 공연을 찾는 것이 아닌, 아이가 낮선 환경이나 어둠에 대한 불안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공연 중 암전(불이 꺼지는 장면전환)이 긴지, 공연 중 호랑이나 도깨비같이 무서운 배역이 나오는지 미리 극단 측에 문의해 본 뒤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아이는 공연장에서만이 아닌 오기전의 상황과 컨디션 등 좋고 싫음이 다양한 요인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죠. 한 두 번의 상황으로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싫어하는구나,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공연을 볼 수 있는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 <사진 1> 아이들극장 기획공연 <엄마이야기> ©아이들극장

공연장이 편해지고 아동극을 보는 것을 잘하게 되었다면 이제 다양한 공연을 접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아동극의 다양성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은 담론이 오가는 것은 바로 캐릭터 공연일 것입니다. 상업적인 캐릭터 공연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파괴할 수 있다는 공연예술전문가들 의견과 기왕 돈내는 것, 인지도도 있고 큰 무대에서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부모님들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물러나 아동발달에 따른 시각으로 해석하자면 캐릭터가 아이들에게 호응을 얻는 시기는 모든 것을 처음 배워가는 시기인 만1~3세경입니다. 캐릭터가 그려진 치약, 칫솔로 거부감 없이 양치질을 시작하게 되고, 캐릭터가 그려진 식기를 쓰면서 밥을 먹게 되는 게 캐릭터가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공연에서도 캐릭터공연은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잘 아는 캐릭터들이 나와 춤추고 날아다니는 대극장 스펙터클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아 아이들이 공연을 처음 접하는 시기에 거부감 없이 극장환경과 공연무대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뽀통령이라 부르는 뽀로로 캐릭터도 4세만 넘어가면 유치하다고 자연스럽게 보지 않게 되기 때문에 무조건 캐릭터 공연을 반대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아동의 아동극 진입까지 축소시키는 짧은 시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내 아이를 위한 것인 만큼 아무 내용 없이 캐릭터만 내세워 돈을 벌려는 행태에 대해서는 견지해야 합니다. 만화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해외 공연들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좋은 아동극 연출가, 스텝들을 참여시켜 완성도와 캐릭터공연의 장점을 높인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소극장 아동극은 화려한 스펙터클과는 다른 점에서 아동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지지만 그만큼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연출가가 하고 싶은 다양한 이야기, 창의적인 소재와 다양한 극적 요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 배우와 아이들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호흡하며 미세한 감정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엄마의 속삭임처럼 무대와 관객사이 끊임없는 정서적 상호작용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편식입니다. 특히 패스트푸드의 과도한 편식을 염려하듯이 지나치게 캐릭터 공연, 눈을 사로 잡는 공연만 아이에게 보여줄 경우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다양한 소재와 연출을 통한 창의성과 정서발달의 기회를 가로막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동극에 필요한 다양한 소재와 연출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난 칼럼 ‘아 이들에게 아동극은 왜 필요한가’ 에서 아동극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삶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데 그 가치가 있다고 설명하 였습니다. 즉 아이들은 아동극을 통해 다양한 삶 의 소재들을 만나고 경험할 권리를 가집니다. 그것이 설 령 삶의 밝은 부분만이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아이 들도 생후 3개월이면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10 개월이 넘어서면 성인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가 지게 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공연이나 TV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고 카타르시스와 삶의 위로를 받으면서 아이들은 웃는 인형처럼 좋은 이야기, 웃긴 이야기, 밝은 이 야기만 들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직까지도 국내 아동극 전반에 팽배합니다. 아동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 체로 여기는 선진국일수록 오히려 이혼, 장애, 폭력, 전쟁, 죽음, 슬픔과 같이 다양한 소재를 아동의 언어 에 맞게 극으로 담아내고 관람을 통해 아이 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기회를 만 들어 줍니다.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여 전히 그 벽이 높지만 최근 동화책 시장에서는 서서히 소재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개방되고 있습니다.

 
. 좌 : Sinna Mann(그림 Svein Nyhus, 글 Gro Dahle |Cappelen, 2003) | 우 : Sinna Mann - teaterforestilling for barn og voksne Tickets, 2017

위 사진은 세계적인 상을 여럿 수상한 'SINNA MANN'(국내에는 ‘앵그리 맨’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됨)이라는 동화책과 그것을 극화한 공연의 한 장면입니다. 노르웨이 부부작가인 스베인 뉘후스와 그로 달러는 불편한 주제의 그림책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 책에서는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화가 나면 엄마와 나를 두렵게 만드는 아빠의 가정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불편한 그림책은 “잘 팔리지 않더라도 도발적이거나 세상을 바뀌는 효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무력감과 죄책감을 덜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그림책을 원작으로 하여 Egal theater가 노르웨이 문화위원회와 각종 재단 등의 후원을 통해 제작한 아동극은 수많은 학교를 순회하며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었고, 피해아동 뿐만 아니라 자라서 사회 구성원이 될 일반 아이들에게까지 가정폭력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아동극이 단순히 귀엽고 신나는 음악과 율동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와 사회까지 바꿀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어떤 공연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 글의 결론은 ‘다양성’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다양성은 ‘아무거나’를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더 대충 조잡해도 된다는 것이 아닌, 앞서 말한 것처럼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에 오히려 만드는 이도, 고르는 이도 더 신중하고 엄격해야 합니다. 다만 볼거리가 많은 공연이어서, 유명한 원작의 공연이어서, 아이가 웃고 즐거워해서, 아이가 공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서 등등 모든 아동극은 나름의 좋은 요인들을 각각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보다, 지금보다 더 많은 ‘다양한 공연’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아동극이 좋은 것이고 어떤 아동극이 나쁜 것이냐는 질문은 경계가 필요합니다. 프레임을 씌우고 잣대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국내의 열악한 아동극환경을 더욱 뒷걸음질 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작을수록 기준도 수준도 뿌리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강점과 약점을 가진 아동극들이 마을 가까이에서부터 대형 공연장까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질 때 아이들은 좋고 싫음의 취향도 발견하고, 연령과 이슈와 목적과 수준에 따른 보다 전문적이고 다양한 공연도 만들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니까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장벽이 없습니다. 아동극은 그저 귀엽고 즐거워야 한다는 프레임에 우리 아이들을 가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이미 아동극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공연은 좀 슬펐어”, “이 공연은 딱 내 얘기 같았어”, “이 공연은 우스워서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어”, “이 공연은 사실 조금 졸았어”, 아이들에게 필요한 아동극은 바로 이 모든 공연이 아닐까요.

  • 김태희
  • 김태희   

    예술이 결코 삶에서 먼 것이 아닌, 본능이자 삶의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강연과 글로, 교육으로, 기업자문 으로, 정책사업으로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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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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