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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극치료로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작성자 : 브라이어스 등록일시 : 2018-11-23 조회 : 6168
 

연극의 본질은 무대라는 또 다른 세상에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 즉 변신이다. 변신을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연극이 치료의 힘을 발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발달장애와 연극치료』에서)

 

1. 첫 만남

 

엄마와 아이가 문을 빠끔히 열고 쳐다본다.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와 신기한 듯 사방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는다. 아이의 시선은 피규어와 종이벽돌, 인형 등을 향하고 있다. 마음대로 갖고 놀라고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벽돌쌓기를 하고 그 위에 피규어를 놓고 혼자 놀기에 집중한다. 엄마와 상담하는 사이 아이는 살짝 귀를 쫑긋 세워 듣기도 하지만 곧 장난감에 몰두하며 즐겁게 논다.

 

치료사는 작업 전반에 걸친 세부 사항들-어떤 목표로, 얼마동안 진행할 것인지, 개별 아니면 집단으로 할 것인지 등등-을 처음 만남에서 보호자와 충분히 의견을 나눈 다음 아이에게도 동의를 구한다. 치료란 무엇보다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엄마, 그리고 치료사와의 첫 만남, 연극치료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진1> <사진 1> <사진 2> 아이는 피규어를 통해 자기만의 세상을 만든다.아이들은 연극 안에서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감각과 감성을 깨운다.
 

2. 편안한 공간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아이가 이제는 황급히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는 신나게 무언가를 만들면서 치료사에게 이야기한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고, 학교에서는 친구들이랑 무엇을 했는지 집에서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등. 치료사는 아이가 지난 회기를 마친 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살펴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이번 회기 작업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매번 벽돌이나 천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그 안에 들어가서 혼자 놀던 아이는 마치 자기 방인 양 공간 전체를 자유롭게 누비며 다닌다. 어느 새 함께 작업하는 이 공간이 편안해진 모양이다. 이제는 손을 마주대고 움직이기도 하고, 서로 등을 쓰다듬어 주는가 하면 기대기도 한다. 공간의 편안함 속에서 함께 한다는 유대감이 생겨나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놀이와 상상

 

연극치료는 말 그대로 ‘연극’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이때 연극이란 단순히 공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연극적인 것을 포함한다. 즉, 관객이 되어 지켜보는 것에서부터 무대를 꾸미고 역할을 제대로 입고 연기하는 것까지 말이다. 여기에는 소위 오감자극, 감성자극, 감정표현, 행동모방, 이야기, 움직임, 대사, 노래 등 살아가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들이 포함된다.

 

그런데 연극의 이 모든 속성 바탕에는 두 가지 중요한 핵심요소가 있다. 놀이와 상상이다. 마음껏 놀고 멋지게 상상하는 것은 자유로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때 그것에 대한 책임도 기꺼이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연극치료 작업 초반부에 특히 놀이에 치중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늑대와 우리 등 아무리 좁은 작업실 안에서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 논다.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발산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놀이는 우리 자신을 되찾아주는 본능과도 같다.

 

이제 아이들은 연극 안에서 자유롭게 변신한다. 작은 상자 위에 서너 명이 앉아 노를 젓기 시작하면 그 상자는 순식간에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가 된다. 때굴때굴 구르면서 눈송이가 되기도 하고, 흐르는 물이 되기도 한다.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가 하면, 천사도 악마도 신적 존재도 원하는 만큼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점에서 힘들어하는지, 마음의 상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성장해 나간다.

 
<사진3> <사진 3> <사진 4> 치료사와 아이들은 서로 보고 함께 연극하면서 믿음과 신뢰를 쌓아간다.가면은 자기를 알기 위한 아주 좋은 연극 도구다. 치유연극이 끝난 뒤 관객들은 무대에서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경험한다.
 

4. 치료와 회복

 

연극치료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까? 하나로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언어발달이 늦어서, 인지발달이 늦어서, ADH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틱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다운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등. 이 외에도 불안해하는 아이가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 수줍은 아이가 좀 더 자유롭고 씩씩해져서 앞으로 닥칠 위기에도 잘 대응하기 위해서 연극치료 작업실에 온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훈이(가명)는 ADHD 진단을 받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살게 된 탓이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지극정성으로 훈이를 돌봐주신다. 작업실에 들어오면 정신없이 이것저것 만지고 지나치게 말이 많은데다가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도 자꾸 매달려서 작업에 방해가 되곤 하였다. 따라서 훈이가 안정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따라서 초반 작업에서 모두 함께 바닥에 엎드려서 눕게 한 다음 치료사들이 등을 쓸어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집단 작업에서도 아이와 치료사가 일대 일로 함께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두서없이 이야기하던 훈이가 점차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연극 안에서 다양한 역할들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사실 훈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누군가 자신을 싫어할까봐, 그러면 또 버려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훈이는 연극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는 힘도 찾고 엄마 대신 할머니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실히 알게 되면서 더 이상 과잉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훈이 할머니께서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철이는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고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탓에 학습부진아가 되었다. 겉보기에는 약하고 순해 보이지만 동생을 때리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만큼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작업실에 와서도 자신은 아무 것도 못한다며 무기력하게 앉아 있곤 하였는데 치료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자신의 문제는 공부 못하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이후 철이는 또 다른 친구인 영수와 함께 연극치료 집단 작업을 하게 되자 무척 좋아하였다. 영수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폭력 피해를 당해서인지 매우 소극적인데다가 무기력하고 불안해하였다. 철이와 영수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고, 영수가 자신을 때린 친구들이 몹시 밉다고 말하자 철이는 자신은 죽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철이 엄마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저마다 상처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알고 금방 회복하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을 앓는다. 치료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10명의 아픈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10 가지 병과 치료방법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연극치료도 그러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매체가 있는데, 바로 몸이다.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몸은 기억한다. 연극을 통해 우리는 바로 몸 안의 기억과 만난다. 몸은 정직하다. 머리로는 속일 수 있지만 몸은 그럴 수 없다. 그렇기에 연극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알아가고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치료는 우리로 하여금 행복한 세상을 꿈꾸도록 한다.

 

* 사진1~4 연극치료 활동 사례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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