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연극 ‘엄마이야기’. 죽음 박정자를 따라나선 9살 태호 김성수.(사진제공=종로문화재단)
일흔 안팎의 배우 박정자와 한태숙 연출 그리고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를 이끌고 있는 김숙희 이사장, 베테랑 연극인들의 위엄은 안데르센 동화연극 ‘엄마이야기’(21일까지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시종일관 어두컴컴한 무대 위에는 괴물물고기(이지혜)에게 준 엄마의 눈알이 굴러다니고 하카탁(이정국)의 공격이 이어진다.
자식을 위해 죽음, 괴물물고기, 문지기(허웅)에게 목소리, 눈알, 젊음 등을 기꺼이 내어주는 엄마의 여정은 눈물겹다. 아들이 있는 죽음의 정원에 도달해서도 쉬운 결정은 없다. 두려워 우는 아이, 짐짓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울고 있는 엄마의 등을 토닥이거나 손을 꼭 잡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무섭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는 없었다. “아동극이라고 ‘애들은 그럴 것’이라는 짐작 안에서만 보여줘야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한태숙 연출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어른들의 ‘그럴 것’이라는 짐작 속의 아이들은 실제 아이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의연하고 속 깊은 아이들을 새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엄마이야기’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연극이다. 그 가치의 핵심은 배우 박정자다. ‘죽음’으로 분하는 그는 서늘하지만 또 따듯하다. 죽음이라는 두려운 존재지만 마냥 차갑지만도,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마냥 친절하지만도 않다. 공포와 따스함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극을 진행하는 이 베테랑 배우는 아이들에게 죽음은 두렵지만, 마냥 꺼려할 것만도 아님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9살 어린 나이에 생애 첫 죽음을 목도했던 자신처럼 아이들에게 첫 죽음으로 남고 싶었던 배우 박정자,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엄마, 아빠, 주변인들과 함께 보는 연극이길 바라던 한태숙 연출, 두 베테랑의 강력한 의지는 “어릴수록 최고의 작품을 봐야 한다”는 김숙희 예술감독을 만나면서 빛을 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