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보다 뛰어난 어린이의 능력을 꼽는다면 ‘무한한 상상력’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데요.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접하며 이미 만들어진 화면을 보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혹시 틀린 것은 아닐까?’ 두려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소극적이고 정해진 틀 안에서 정답만을 이야기하려는 경우가 많은데요. 종로문화재단에서는 오브제를 소재로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하는 2023년 문예회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지원사업 선정 프로그램입니다. 종로 아이들극장에서는 매년 다양한 공연 형식, 주제, 소재에 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국내외 우수 오브제극을 선보이고 이와 연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공연 감상과 놀이, 체험, 예술 창작 과정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예술적 사고와 상상력 확장에 도움을 주고, 공연 관람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극장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에서는 오브제를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브제(object)란 사물, 물체를 지칭하는 말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 신문지, 필통, 옷걸이 등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에서는 그동안 너무 흔하게 볼 수 있어 무시했던 오브제에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생명을 부여하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을 만드는 프로그램인데요. 6~7월 진행된 1기에 이어 지난 8월 21일부터 9월 9일까지 진행된 2기 활동이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수업에 진행한 김보희, 이원선, 배민경 강사로부터 <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 활동을 들어봤습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완성한 나만의 이야기
<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 >는 1회차당 3시간, 총 4회차 수업으로 구성됩니다. 첫 수업 ‘공연 상상하기’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오브제와 친구가 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물을 천천히 살펴보고 관찰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해 생명을 부여하고 캐릭터를 만들어줍니다. 이를 통해 쓸모없어 보이던 오브제가 새로운 쓰임을 갖고 다시 태어나는데요. 신문지가 공이 되고, 박스가 미끄럼틀이 되는 모습을 통해 어린이들은 어떤 물건이든 나름의 의미와 역할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김보희 강사는 “물건에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것과 대화해보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2~3회차에서는 조를 나눠 ‘공연 연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나만의 오브제 캐릭터를 등장인물로 설정해 어린이들이 직접 대본을 써보고 무대를 만드는 것인데요. 어떤 오브제가 선택될지 알 수 없고, 수업에서 즉흥적으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서 많은 어린이가 창작의 고충을 겪는다고 해요. 이때 이야기의 배경은 우주나 심해처럼 아직 어린이들이 경험해 보지 않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정됩니다. 직접 배우가 돼 대사를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거나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등 공연의 형식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아직 글을 쓰고 말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수업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김보희, 이원선, 배민경 강사는 최대한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생각의 틀을 깨도록 노력한다고 전했습니다.
공연 연계 수업에서는 함께 참여한 다른 친구들과 역할을 분배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의견을 나누며 연극을 완성하는데요. 코로나19로 개인주의가 익숙해진 현실에서 함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은 내 의견을 제안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소통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드는 어린이들도 있었습니다.
“지우개를 선택한 친구가 있었는데 지우개 끝에 사람처럼 머리카락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지우개 특징을 이용해 대머리 캐릭터를 만들었더라고요. 지우개를 지우면 머리가 벗겨져 당혹스러워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무척 기발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1기 때는 문구점을 배경으로 한 연극에서 “왜 이렇게 아이들이 안 오지? 방학이 끝나면 다시 찾아줄까?”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물음에 “그렇지 않을걸? 요새 어린이들은 다 쿠팡으로 시키잖아!”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상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느꼈어요.“ - 이원선 강사
“이번 수업에서는 신문지나 박스 같은 재활용품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신문지로 낚시대나 요술 방망이를 만드는 변형하기 놀이를 진행했어요. 변형했던 신문지는 구겨져 공이 되거나 다시 펼쳐 양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버려질 줄 알았던 물건이 계속 재활용되면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 것이죠. 저희도 한 차례 수업이 끝났다고 오브제를 버리지 않고 다음 수업에도 활용했어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오브제에 애정을 갖고 물건의 소중함도 배우게 됩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내가 만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길 두려워해요. 그랬던 친구들이 수업을 지속할수록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할 때가 많아요. 또 집중하지 못하고 뛰어다니던 친구도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행동을 고치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지더라고요.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들어야 하는 연극은 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기르고 정서 발달에도 효과적입니다.“ - 김보희 강사
연극으로 성장하는 나의 가능성
4회차 공연 감상하기 수업에서는 키우피우 오브제극 축제 일환으로 열린 핀란드 공연팀의 그림자 인형극 <새를 사랑한 산>을 관람했습니다.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연기를 하며 오브제극을 체험한 아이들이 공연을 관람함으로써 무대의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하는 것인데요. 자연스럽게 올바른 공연감상법과 예절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보희 강사는 첫 수업 때 말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 하던 어린이가 수업을 지속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연극 대본을 쓰고 공연하는 게 가능할까? 지루해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수업이 이뤄지는 월요일만 기다릴 만큼 정말 즐거워하더라고요. 워낙 아이가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놀이를 좋아해 더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선생님들이 어떤 의견이든 수용해주시고 때론 더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시켜 주셔서 아이의 상상력이 더 늘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사대부설초등학교 김도율과 학부모 박상미
“평소 아이들극장에 자주 오는데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하게 됐어요. 조를 나눠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학교에서 만나기 어려운 형들, 누나들과 함께 수업할 수 있어 더 즐거워하더라고요. 학교나 학원에서 자세히 배울 수 없는 연극을 배우고 직접 체험하면서 아이가 생각을 확장하고, 호기심도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 혜화초등학교 심주환과 학부모 서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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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 >를 통해 어린이들은 ‘보는 것’에 익숙했던 예술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업이 진행됐지만, 참여 어린이 모두 수업에 집중하며 연극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우리들의 오브제 놀이터>로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경험한 어린이들이 어떤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미래를 만들지 기대해봅니다.
기획 | 황현 편집 | 슬로우모어 사진 | 김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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