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은 등록문화재 제84호로(2004년에 등록)
고희동 화백이 일본 유학 후 돌아와 직접 설계하고 41년 간
거주한 근대식 한옥입니다. 2008년 종로구에서 부지를
매입하고 복원공사를 거쳐 2012년 11월에 처음 개관하였으며,
2019년부터 종로문화재단이 위탁 운영을 맡아 고희동 화백을
알리는 문화향유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고희동 화백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 직접 설계한 한옥으로 41년간 생활한 곳입니다.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절충을 시도했으며 지상 1층의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는데, 사랑방 옆에 그림을 그리는 화실을 따로 둔 것과 채와 채 사이를 오가기 편하도록 복도를 이어낸 점이 특징입니다. 고희동이 학생들에게 서양화를 가르치고 당대 문화예술인들과 활발히 교류한 한국근대미술의 산실이자 근대 개량한옥의 건축 양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제84호로 등록됐습니다.
2004년 등록문화재 제84호로 등록된 고희동 가옥은 2008년 종로구에서 매입하여 복원 및 보수공사를 마친 후 2012년 일반에 첫 개방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종로문화재단이 위탁 운영을 맡아 고희동 화백과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전시 및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희동 화백과 그의 예술적 유산을 널리 알리고 방문객 모두 향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가꾸어 나갈 것입니다.
서울 비파동 출생으로 관립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수학한 후 1904년 광학국 주사로 임명되어 궁에서 프랑스어 통역 및 문서 번역을 하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1907년 심전 안중식 • 소림 조석진 문하에 들어가 그림을 배웠고, 1909년 한국인 최초로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로 관비 유학을 떠나 1915년 졸업하였습니다. 귀국 후 국내에 서양화를 이식하고자 서양화가, 도화교사로서 활동하였으나 1920년 후반 동양화로 전향하여 전통적 수묵화법에 서양화의 색채 및 기법을 쓰는 절충양식의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습니다.
고희동 화백은 미술행정가로서의 면모가 뚜렷하여 1918년 최초의 근대적 미술단체인 서화협회 결성을 주도하여 총무를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 조선미술협회 초대회장, 1950년 대한미술협회 회장,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정계에도 진출하여 1960년 민주당 참의원으로 당선된 고희동 화백은 미술계의 발전과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65년 향년 80세로 타계하였습니다.
종로구 창덕궁5길 40 (원서동 16)
한옥 (지상 1층) 3개동
부지 : 540㎡ (163평) ㅣ건물 : 162㎡ (49평)
정원
중정
사랑방
전시실
고희동미술관이 재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전시 「사계화조四季花鳥」는 서양화가에서 동양화가로 전향한 춘곡 고희동의 한국적 정취와 미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풍경화와 화조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자연의 아름답고 소박한 요소들, 자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담긴 고희동의 서정적인 한국화를 통해 일상 속 보편적 가치와 문인화적 정서를 향유해 보시길 바라며, 그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서양화 ‘자화상’을 주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화실 인터랙티브 체험 <AI 자화상> 또한 마련했으니 많은 관람과 참여 바랍니다.
종로문화재단이 재개관 3주년을 기념하여 여는 전시 「모던을 터치하다: 고희동, 근대회화의 선구자」는 한국근대미술의 새 시대를 연 춘곡 고희동의 화필생활 50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서양화가로서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영상과 그의 다양한 동·서양화를 골고루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구립미술관이 새로이 입수한 소장품 6점을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대한제국의 관리로 시작하여 선구적 화업의 길을 걸어왔고,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행정가이자 정치가로서 생애를 마무리 한 고희동이 근대미술사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관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준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