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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x PEOPLE | 햇살 가득 들여놓고 함께 여가를 나누는 집, 전상진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2-24 18:05:10
  • 조회 : 6570
 
 

삼청동 85살 한옥, 공유공간으로 변신

 

 

삼청동 문화거리 초입. 왼편으로 뻗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실핏줄처럼 연결된 좁은 길 따라 우아한 처마들이 어깨를 기대고 있다. 종로 한복판에서 만나는 작은 한옥마을. 잠시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행길에 나선 듯 작은 설렘을 선물한다. 오랜 돌담과 새 돌담이 번갈아 공존하는 골목. 짧고 좁은 길에 접한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뜻밖의 공간이 펼쳐졌다.

 

1936년에 지어진 한옥을 지난해 봄부터 여름 끝자락까지 손수 낡은 한옥을 '대수선'해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된 이곳은 '여가생활'이라 이름 붙여졌다. 디귿자의 구조로 이루어진 이 집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사진/영상 제작업체를 운영 중인 전상진 씨의 주거공간이자 작업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위한 공유공간이다.

 

혼자만의 집이지만, 사람들이 의미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과감히 방을 터 긴 거실로 만들었다. 거실 끝에 주방과 작은 서재, 그 위 개인 공간으로 쓰는 다락방, 마당이 보이는 북유럽 스타일의 욕실. 이렇게 간단한 구조이지만, 곳곳에 섬세함이 돋보인다. 길쭉한 원목 테이블이 인상적인 거실 벽에는 '들어열기창'도 만들어 놓았다. 이 창으로 빛이 은은히 스며들고, 반대편 통문으로는 지붕과 마당을 통과한 빛이 문살 사이로 쏟아진다. 거실 안쪽에는 옛집의 주춧돌을 그대로 노출해 놓았는데, 80년 훌쩍 넘은 집의 역사를 마주하는 재미를 덤으로 준다.

 

 

 

 

기울어진 기둥을 고쳐 세우고 지붕을 뜯어내며

'다름'을 지향하는 젊은 창작자들이 오피스텔과 건물 지하를 벗어나 2층 양옥이나 한옥을 개조하는 요즘이긴 하나, 옛집을 이렇게 작정하고 직접 고쳐 사는 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막연한 로망으로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할지 만만치 않은 과제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한옥을 선택했을까? 대학원 시절, 선배 동기들과 잠시 모여 살았던 한옥에 대한 아련한 추억 위로 그는 한옥이 가진 태생적 매력에 끌렸다. 작더라도 마당이 있어 사방으로 넘나들 수 있는 한옥은 그가 꿈꾸는 공유공간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혼자 고쳐야 했으니 대지 기준 30평 이하의 집을 물색했다. 그렇게 찾고 찾아 눈에 들어온 15평의 집. 한옥을 잘 모르니, 목수와 작업반장을 모셔 일을 배우며 공간을 설계하고 만들어나갔다. 단열과 설비를 새롭게 하고 싶어서 살릴 수 있는 기둥만 남기고 모두 철거했다. 철거부터 기와, 도배, 미장, 설비 등 도움이 필요한 공정에는 인력들의 일정을 조율해 진행하는 것이 중요했다. 설계사무소와 시공사에서 해야 할 일들을 직접 했으니, 이 모두를 관리하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쏟은 5개월이었다. 익선동 앞 종로사우나에 회원권을 끊어 놓고 시간을 아껴 바짝 집중했던 두 계절이었다.

 

 

"집이 오래되다 보니 15도가량 기둥이 쏠려 있었어요. 무너뜨리지 않고 바로 세우는 일이 가장 어려웠고, 정말 대단한 작업이었죠. 부모님 양옥집을 지을 때 겉으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주춧돌을 잘 놓는다는 말도 다시 새겨보게 되고, 공정마다 지식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배운 것이 많아요." 건축법상 수선, 대수선, 신축, 개축, 증축의 차이를 확연히 알게 되고, 어떻게 지으면 지원금이 받을 수 있는지, 또 한옥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리스트를 꿸 정도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공유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그가 이 집을 고치며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지붕을 뜯어내고 발견한 시간의 흔적이다. 지붕의 실내 안쪽으로 막혀있던 천장을 한층 벗겨내니 일본어로 된 신문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1945년 이전 일제강점기 시절에 붙여진 것인지도 모른다. 85년간 숨겨져있던 거대한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그는 자신의 타임캡슐도 천장 어딘가에 숨겼다. 오십 년, 백 년 후 또 다른 누군가가 발견했을 때 오래전 이곳에 머물던 자신을 느끼게 될 짜릿한 순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한옥, 젠트리피케이션의 지혜로운 대안으로

처음 삼청동을 선택했을 때, 이곳에 붙이고자 했던 이름은 '마을회관'이었다. 그만큼 동네의 사랑방으로써 네트워크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삼청동에서 공사를 진행하며 들여다보니 이 동네를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거주인들이 많지 않았다. 상업시설은 많지만 거주 인구는 지극히 적은 상태였다.

 

동네가 나이 들어가고 쇠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 동네마다 작은 카페와 공방이 들어서 사람을 불러모으고 그 동네만의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가지만, 곧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 그 명맥을 끊어내는 일이 다반사다. 20대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을 간직한 곳들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이 집을 공사하면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정말 살려고?" "뭐하려고 그러냐?" 이 질문을 꽤 많이 들었다는 전상진 씨. 어쩌면 자신도 그 흐름에 동참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다며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동네의 생명력이 이어지려면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어야 하죠. 젊은이들이나 신혼부부가 첫 집 마련을 굳이 대단위 아파트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런 한옥을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시에서도 정책적으로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겠어요. 해보니까, 진짜 가능성이 보입니다. 종로에 한옥을? 그럼 꽤 잘 사는 사람 아냐? 이런 선입견이 있는데, 전혀 아니에요. 경제적으로 충분히 접근할 수 있어요. 부지런히 알아보면 서울시의 지원정책도 있고요.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고,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상황이 된다면 비용을 더 아낄 수 있습니다." 한옥이 대안적 생활공간이 된다면 주거지역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지 않겠냐며 그는 자신과 같은 3, 40대들의 도전을 독려하고 기대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가구, 조명, 소품까지 집에 깃든 사소한 것들까지도 생각 없이 고른 것이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다해 짓고 가꾸었지만, 최고로 잘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는 집에 너무 정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주춧돌을 거실 바닥에 드러낼 것인가 말 것인가 진지하게 의논했던 순간이, 또 함께 흙 나르고 기와 올리던 사람들과의 시간이 삶의 한 조각으로 남았다. 여러 사람과의 소통을 생각하며 정성으로 지어 올린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앞으로 이 집의 쓰임은 찾는 이들의 손길과 발길, 오가는 말들로 완성되어갈 것이란 생각이다. 12월부터 3개월 동안 벌써 30여 팀이 이런저런 모임을 가졌다. 단순한 친목 모임 말고도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길 바랐는데, 곧 다가올 세월호 6주기를 앞두고 전시 준비하는 작가들에게도 문을 열어 놓았다.

 

 

원하는 공간을 지었으니, 이제 그는 잠시 멈추었던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생생한 삶이 있는 곳, 작은 역사가 있는 곳에 시선이 머문다는 그에게 '여가생활'은 어떤 에너지원이 되어줄까. 햇살 가득 담은 마당에 삶의 희망이 흘러넘쳐 대문 밖으로, 골목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그려진다. 삶을 재발견해나가는 이 집 주인장의 여정에 아름다운 쉼표와 느낌표로 오래오래 남을 한옥이길, 더불어 이름처럼 많은 이의 여가와 생활을 공유하는 집이길 기대해본다.

 

 

 

 

INTERVIEWEE |

전상진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playinhanok/

 

기획 | 이상미  편집 | 슬로우모어  사진 | 김태화, 전상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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