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은 때로 세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외딴곳에서 숨을 고를 때 찬란한 빛을 완성합니다. 북한산 자락 가장 높은 곳, 40분마다 한 대씩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야 겨우 닿는 평창동의 한적한 꼭대기 비밀스러운 작업 공간이 마침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지난 5월 28일 종로문화재단의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거듭난 김창열 화가의 집이 개관식을 열고 공식적인 첫걸음을 내딛은 것인데요. 30여 년간 세상과의 경계를 지우고 스스로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거장, 고(故) 김창열의 아틀리에 ‘김창열 화가의 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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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을 지우고 비움에 닿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


김창열(1929~2021)은 대한민국 현대미술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거장이자 세계 화단에서 '물방울 화가'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한 인물입니다.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 서예를 접하며 필선과 문자의 매력을 깨달았고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진 6.25 전쟁과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은 그에게 깊은 상실감과 정신적 상흔을 남겼습니다. 격동의 시기를 뒤로하고 1965년 고국을 떠나 미국을 거쳐 1970년 프랑스에 정착한 그는 예술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마땅한 작업실도 없이 마구간을 개조한 허름한 방에서 밤낮으로 붓을 쥐었던 그는 1972년 마침내 물방울 작업의 시초인 〈밤에 일어난 일〉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1988년 평창동에 집을 지었고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창작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려웠던 시절, 김창열 화백은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뒷면에 물을 뿌려 물감이 떨어지기 쉽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햇살을 받으며 영롱한 빛을 발하는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이를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물방울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기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물방울을 통해 존재와 비움, 삶과 죽음의 철학을 끊임없이 변주해 냈으며 6.25 전쟁, 분단이라는 시대적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냈던 그에게 물방울은 내면에 쌓인 거친 슬픔과 분노를 정화하는 일종의 수행이었습니다. 곧 터져 사라질 듯 위태로우면서도 가장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물방울을 통해 그는 모든 집착과 고통을 내려놓는 비움의 미학을 화면에 구현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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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에서 소통으로의 회귀, 김창열 화가의 집
지난 5월 28 김창열 화백이 생전에 작업했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이 공공문화시설 '김창열 화가의 집'으로 새롭게 개관했습니다. 환기미술관과 88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를 설계한 우규승 건축가의 손길로 지어진 이곳은 그가 2021년 별세 전까지 30여 년간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온 아틀리에입니다. 생전에 작업실을 시민에게 공개하고자 했던 화백의 뜻에 따라 종로구는 유족과의 업무협약과 자택 매입을 거쳐 이곳을 공공문화시설로 조성했습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최수연·홍재승이 리모델링을 맡아 마침내 화백의 내밀한 삶과 예술이 하나의 유기적인 동선으로 엮여 있는 거대한 예술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고인을 향한 감사의 시간으로 채워진 개관식은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차남 김시몽 교수는 "세상이 거듭 돌아가듯 아버지는 이곳에서 물방울로 거듭 돌아갔으며 끝없는 집요함으로 현실과 환영, 고통과 정화를 탐구했다"라며 감동을 전했고 정준모 종로문화재단 이사는 "미술관이 아닌 '화가의 집'으로 불리는 만큼 개관 후에도 시민과 늘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내겠다"라며 공간의 앞날에 의미를 더했습니다.
미술관 안으로 발을 들이면 과거 화가의 일상이 머물던 곳곳이 눈에 들어옵니다. 생활 공간으로 쓰였던 2층은 매표소와 감미로운 차 향기가 감도는 카페로 바뀌었고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면 화가의 예술적 깊이를 탐색할 수 있는 두 개의 전시실이 펼쳐집니다. 발길이 닿는 동선의 종착지는 이 집의 심장부인 지하 작업실입니다. 김창열 화백은 작업실을 지을 당시 건축가에게 어머니의 자궁이자 동굴과도 같은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실제로 어스름한 작업실의 천장 구멍에서는 빛 한 줄기가 떨어지는데 화백은 이를 "물방울에 비치는 광채 같았다"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그가 생전 사용하던 붓과 책상, 서적들이 그대로 재현돼 있는데요. 이 은둔처 안에서 화백은 가장 영롱하고 순수한 결정체인 물방울을 만들어내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했습니다.
은밀한 작업실을 구경하고 다시 지상으로 나오면 마법처럼 푸른 정원으로 우리를 다시 맞이합니다. 집의 내부를 깊숙이 탐색한 뒤 다시 자연으로 회귀하는 '회(回)'자 구조의 동선을 걸으며 관람객은 화가가 왜 이곳을 은둔처이자 세상과의 소통 창구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원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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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에서 만난 물방울의 연대기
김창열 화가의 집은 화백의 지지체 실험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간입니다. 과거 파리 작업실은 기후가 습해 종이 반죽이 마르지 않고 부패했지만 평창동은 공간이 넓고 일조량이 풍부해 습기에 취약한 한지 작업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서울의 강렬한 햇볕 덕분에 비로소 종이를 활용한 다채로운 실험들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는 평생 물방울을 그리면서 이곳에서 물방울이 맺히는 바탕이자 배경인 지지체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자 동양 문화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천자문을 화면에 도입했고 매끈한 종이부터 거친 한지, 먹물이 번진 종이, 신문지까지 다양한 질감을 활용했습니다. 배경의 밀도와 굴곡에 따라 물방울이 더 입체적이고 영롱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묵직한 덩어리만 남기도 하는 변화를 이번 전시에서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왼쪽 〈물방울〉, 1980년대, 한지에 아크릴릭 물감, 40×31cm, 종로구 소장
오른쪽 〈물방울〉, 1998, 캔버스, 한지에 아크릴릭 물감, 130×162cm, 종로구 소장
이번 개관 전시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은 회화 19점, 판화 4점, 드로잉 1점 등 총 24점을 선보이며 화백의 예술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지와 종이 작업'을 중점적으로 소개합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회화와 판화, 드로잉 작품과 대표 연작인 〈물방울〉과 〈회귀〉의 완성작, 그리고 그간 보기 어려웠던 밑 작업 과정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히 판에 물방울 형태를 새긴 뒤 한지를 올려 눌러 찍은 〈눈〉 시리즈 판화는 종이 본연의 물성을 극대화해 실제 눈이 쌓인 듯한 서정적인 풍경을 자아냅니다. 종이를 소재로 한 이번 전시를 통해 지지체의 변화에 따라 생명력을 얻는 물방울의 형태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왼쪽 〈물방울〉, 1990년대, 캔버스, 한지에 먹, 아크릴릭 물감, 1620×130cm, 종로구 소장
오른쪽 〈La Neige(눈)〉, 1999, 종이에 인타글리오, ed.14/30, 72×58.5cm, 종로구 소장
가파른 산자락을 거슬러 올라 당도한 이 고요한 동굴에서 거장은 끈질기게 심연을 파고들며 가장 투명한 물방울 결정을 빚어냈습니다. 거장이 지켜온 고독과 예술의 깊이를 담은 김창열 화가의 집이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쉼표이자 새로운 영감의 시작점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