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타고난 본성으로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바뀌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여기 하루아침에 새롭게 다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입니다. 아무리 힘든 사람을 봐도 꿈쩍하지 않고 그저 돈을 버는 것에만 급급했던 스크루지는 유령이 안내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미래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뒤에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새롭게 살겠다’고 마음먹게 되죠. 모든 게 하룻밤의 꿈이었던 것을 알게 된 스크루지는 마음먹었던 대로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산업혁명 직후인 1843년에 발간된 이 소설은 영국 사회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자선이나 모금에 관심 없던 영국의 냉정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기 시작한 것이죠. 스크루지가 나누는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처럼 영국의 부자들도 열심히 벌기만 하던 자신의 메마른 삶을 성찰하게 된 것입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한 해를 돌아보는 이맘때면 세계 각국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원작으로 한 연극과 뮤지컬이 열립니다. 오는 12월 15일부터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까지 종로 아이들극장에서도 <구두쇠 스크루지>가 무대에 오를 예정인데요. 긴 원작 소설을 70분으로 압축한 이번 공연은 찰스 디킨스가 화자로 등장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친근한 내레이션으로 진행됩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다채로운 음악들은 공연에 함께한 종로구립 소년소녀합창단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들려줄 예정입니다. 공연을 앞두고 분주한 <구두쇠 스크루지> 연습 현장을 찾아 이번 공연이 주는 의미와 감상 포인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함께하는 점이 가장 특별한 것 같아요. 종로구립 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들이 노래는 물론 배우들과 연기 호흡도 맞춥니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우지 않은 어린이들이기에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가득 담은 박소연 작곡가의 음악을 어린이들이 부를 때면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듭니다.
성인 배우들의 경우 주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인 다역을 맡았어요. 하룻밤의 ‘일장춘몽’을 다루고 있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데 무대 뒤는 그야말로 전쟁터예요. 다음 장면, 다른 역할을 실수 없이 소화하기 위해 배우들이 분주히 움직입니다. 이번 공연은 집중력이 길지 않은 어린이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무대 연출을 고민했고 속도감 있는 장면 전환이 이뤄지도록 구성했습니다.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화려한 의상도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거라 확신합니다.
스크루지는 사회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마음을 나눌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갇혀 지내다 보니 돈에 대한 집념만 강해진 것이죠. 그렇다고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기에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극이 시작할 때는 음흉하고 못됐던 스크루지가 환상을 경험하며 서서히 바뀌어 가는 모습,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신이 삶을 더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되는 장면을 연기할 때는 가슴 벅찬 감동이 느껴졌어요.
특히 현재유령이 스크루지에게 ‘내 수명은 오늘 단 하루뿐이야. 이 순간이 중요한 거야. 그걸 잘 알아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어른 관객들에게도 묵직한 메시지를 줄 거라 생각해요. 모든 게 꿈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스크루지가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폴짝폴짝 뛰는데 울다가 웃다가 절망했다가 기뻐하며 다시 희망을 품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었던, 어렵지만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긴 소설 내용을 70분에 압축했지만, 극이 진행되는 내내 스크루지가 등장하기에 숨돌릴 틈도 없이 연기를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관객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함께 연극을 보러 온 모습을 보면 가족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준 것 같아 보람이 큽니다.
무대에 오르는 19명의 출연진 연령대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는 점이 무척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무대 경험이 없는 어린이 출연자들을 배려하며 호흡을 맞추고, 어린이들 역시 생소했던 연기를 여러 번 연습해 완성해가는 과정이 뜻깊었어요. 저는 심우창 선생님과 어린이들이 함께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스럽더라고요. 연습할 때 심우창 선생님을 보면 정말 천진난만해 보이고 역할 자체에 몰입하시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런 케미스트리를 쉽게 만날 수 없기에 이번 공연이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저는 스크루지에게 현재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현재유령’ 역할을 맡았어요. 운이 좋게도 정말 아름다운 솔로곡이 있어 노래를 선보일 공연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좋아하는 장면이 정말 많지만 현재유령과 스크루지가 만나는 장면을 꼽고 싶어요. 과거에 다녀온 스크루지가 현재유령을 만나면서 닫혀 있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데 망설이기도 했다가, 춤도 췄다가 갈팡질팡하는 스크루지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또 현재유령은 오늘 하루만 사는 유령이거든요. 예쁜 소녀의 모습에서 점점 나이가 들어 할머니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이 짠하게 느껴집니다.
<크리스마스의 캐럴>은 자본과 물질만을 쫓다 인간소외 문제가 발생하던 산업혁명 때 만들어졌습니다. 그때와 다른 시대, 다른 국가에 살고 있지만 산업혁명 때 있던 문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죠. 타인과 연대하지 않고 돈만 추구하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지금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러한 삶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원작을 어린이를 위한 공연으로 각색하면서도 이러한 메시지를 함께 담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구두쇠 스크루지>는 어린이들은 물론 자녀와 함께 온 부모님들에게도 뜻깊은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연출가로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연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길 꿈꿉니다.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본 공연,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 때 본 영화나 책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죠. 이번 <구두쇠 스크루지>도 관객들에게 현재를 돌아보고, 지금의 문제를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잊지 못할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기획 | 이상미 편집 | 슬로우모어 사진 | 김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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