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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X TOUR | 종로 추억탐방 시리즈_ 세운상가 편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3-06-12 14:28:52
  • 조회 : 1405

문화탐사대 종로픽플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종로 추억탐방 시리즈>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종로의 장소와 그곳을 지켜온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첫 번째 시작은 바로 세운상가인데요.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 세운상가가 생기기까지는 정말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있어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미국 등의 폭격에 화재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종로-을지로 일대에 여러 소개공지(전쟁 중 폭격 등으로 발생한 화재가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빈 광장)를 만들었는데요. 지금 세운상가가 자리한 일대가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집을 잃은 이재민들과 이주민들이 대규모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어요.

이후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도심재개발 사업으로 결정된 후 2년 만인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단지 세운상가가 탄생합니다. 세운상가는 '세계의 기운이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50년 전통의 국내 최초 전자 상가입니다. 오래된 역사만큼 수많은 기업이 이곳을 거쳐 갔는데요. TG삼보컴퓨터, 한글과 컴퓨터, 코맥스 모두 세운상가에서 시작됐답니다. 전자 상품 유통의 메카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죠. 세운상가에서는 수많은 긴 시간을 이어온 가게와 전기∙전자 부품, 전기 재료, 컴퓨터 반도체, 음향기기, 전자제품, CCTV, 오락기기, 노래방기기, 조명기기 등 다양한 전자 상품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1968년 준공 이후 서울의 주거 중심, 유통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1990년대 이후 위기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지금까지도 세운상가를 꾸준히 지키고 계십니다. 세운상가가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과거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그 시절을 직접 살아오신 세운상가 세 분을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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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세기 시간을 간직한 곳, 오스타사 박희진 사장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69년부터 55년째 ‘오스타사’를 운영 중인 박희진입니다. 주로 모터 종류와 트랜스(변압기) 등 전자부품을 팔고 기계나 전자제품 수리를 하고 있어요. 18살 때 처음 이 일을 하게 됐는데, 세운상가가 시작됐을 당시 제 고향인 충청북도 영동에서는 이곳으로 와 일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주변에서 ‘너도 와서 함께 일해보자’ 제안해 주셔서 기술을 배워 일을 시작하게 됐죠. 원래는 옆 건물인 예지동에서 계속 일하다가 그쪽이 재개발되는 바람에 재작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사 왔어요.

Q. 세운상가에서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당시 세운상가는 전자제품과 전기제품의 메카로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유망한 곳이었고, 특히 1980년대에는 어떤 가게든 장사가 무척 잘됐어요. 지금이야 한 가게에 직원 1~2명이 있지만 당시에는 직원 10명 이상, 손님들도 줄을 서고 가게에 들어올 만큼 북적북적했습니다. 지금은 중국에서 들어온 저렴한 전자제품들이 많아지면서 어려운 점이 적지 않죠.

Q. 세운상가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했던 경험을 소개해주세요.

먼 지역에서 저희 가게를 찾아와 전자제품을 고쳐가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고친 물건이 마음에 들어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추천해주고, 결국에 그 집안사람들이 모두 올 때 뿌듯했죠. 대대로 몇십 년에 걸쳐서 단골로 계속 찾아와주면 너무 기억에 남아요. 그중에는 현재 돌아가신 분들도 있는데 그분의 자녀분들이 계속해서 이곳을 잊지 않고 찾아주면 그만큼 뿌듯한 게 없어요. 가장 오래된 단골은 보통 50년 정도인데 좀 전에 왔다 가신 분도 40대 때부터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찾아주고 계십니다. 단골손님은 이제 그냥 서로 친구 같아요. 아까도 15,000원만 달라고 했는데 30,000원이나 주고 가시더라고요. (웃음) 이게 다 정이죠. 작년까지 방문해주신 95세 단골손님도 기억에 남아요. 이렇게 계속 찾아와 주시는 게 감사하고, 저 역시 단순한 생업이 아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게 됩니다.

Q. 세운상가에 많은 분이 계속해서 남아 계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앞으로의 바람을 들려주세요.

세운상가는 서로 다 연결돼 있고 상가 안에 다 몰려 있으니까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어요. 단종돼서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전자 부품도 세운상가 건너 건너에 아직 남아있어요. 그래서 여길 못 떠나고 서로 돕는 거죠. 저는 세운상가가 재개발되지 않고 계속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긴 시간 이곳을 지켰지만, 이 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데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동생들이 매번 “형 좀 놀면서 해. 좀 쉬어~” 라고 말하는데 저는 일하는 게 더 재밌고 좋더라고요. 18살 때 이 일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적성에 맞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전 그냥 이 일하는 게 엄청 좋아요.

Q. 마지막으로 가게 안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소개해주세요.

이 책상과 전화기가 가장 중요한 보물이죠. 두 물건 모두 제가 세운상가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썼던 물건이에요. 책상은 50년 넘게 썼는데 아무래도 손에 가장 익숙해서 못 버리겠더라고요. 전화기도 다이얼 돌리는 옛날 전화기로 책상만큼이나 오래됐는데도 고장 나지 않고 편해서 계속해서 쓰고 있어요.

박희진 사장님과 50년된 전화기

오스타사 | 서울시 종로구 종로26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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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묻은 부품이 가득한 곳, 소문모터 장재하 사장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문모터’를 운영 중인 장재하입니다. 우리 가게는 모터, 소형모터 같은 기계 부품 판매 전문점이에요. 수리도 하고 판매도 하고 있죠. 이 일을 한 지는 45년에서 50년 정도로 20대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왔네요. 사실 처음에는 먹고 살길이 막막해 서울로 올라와 모터에 대해 배웠어요. 그때 세운상가가 막 잘 되던 시기라 여기 와서 시작하게 됐죠. 사실 다른 곳들도 많았는데 세운상가가 제일 중심지라 여기에 자리 잡게 됐어요. 예전에는 저희 같은 모터 전문점이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없어져서 몇 가게 안 남았어요. 조금 씁쓸하죠.

Q. 세운상가의 과거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전자제품을 전부 고쳐 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물자가 귀하기도 했지만, 내 손길이 담긴 물건을 좋아해서 전자레인지부터 커피포트까지 다 고쳐서 썼어요.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고 값싼 외국 제품들이 들어오면서 점점 수리를 안 하더라고요. 물건이 고장 나도 저렴하게 다시 살 수 있고, 긴 시간 사용하지 않아 물건에 정도 없으니까 버리고 새로 사고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세운상가의 손님도 크게 줄게 됐어요. 예전에는 풍족하진 않지만, 바쁘게 일하면서 오며 가며 막걸리도 한잔하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만두거나 재개발되면서 사라졌어요. 또 옛날에는 서로 기대고 다 같이 상부상조하는 느낌이었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그런 정겨움이 사라져 아쉬워요.

Q.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세운상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예전 제품이나 물건이 다 남아있으니까요. 옛날 부품이나 제품들은 이제 만드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생산이 안 되는 것들이 대다수인데 세운상가에는 모두 조금씩 남아있어요. 그래서 세운상가를 찾는 사람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한 번씩 꾸준히 찾아오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여길 떠날 수가 없는 거죠. 저에게도 세운상가는 제2의 고향이자 가장 편안한 공간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집보다 더 오래 있었으니까요. 세운상가 주변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의 얼굴도 다 알아요. 그러다 보니 정이 많이 가죠. (웃음)

Q. 마지막으로 가게 안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소개해주세요.

오랜 세월이 묻어난 모든 부품이 다 제 보물이죠. 이제는 더 생산되는 물건들도 아니니까요. 요즘은 가끔 젊은 사람들도 이런 오래된 부품들 소장하고 진열한다고 여러 개 사 가는 사람들도 몇몇 있어요.

소문모터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4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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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낭만을 간직한 곳, 유명사 김봉근 사장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명사’ 대표 김봉근입니다. 저희는 팝, 가요, 클래식, 재즈 등을 들을 수 있는 가정용 음악 기기를 판매하고 있어요. 가게를 운영한 것은 21살 때부터로 한 40년 됐네요. 가게를 운영하기 전에는 전자 회사에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 전공이 전자과였는데 그 당시 세운상가가 전자 메카로 유명해지면서 아버지의 권유로 회사 일을 그만두고 1981년쯤 2년 동안 세운상가에서 짧게 근무했죠. 군대에 가면서 일을 그만뒀지만, 전역하고 난 후 어느 날 세운상가를 지나가는데 우연히 함께 근무했던 사장님을 다시 만나게 돼 다시 붙잡혀서 지금까지 일하게 됐어요. (웃음) 10년 정도는 가게 종업원으로 끈기 있게 계속해서 일했는데 그러다 사장님이 일을 그만두시게 되면서 제가 넘겨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간 길이 생기더라고요.

Q. 예전 세운상가의 모습은 어땠나요?

1970~90년대까지가 세운상가의 가장 전성기로 세운상가 가운데 골목을 들어오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반짝반짝했어요. 40W 형광등을 복도에 쫙 깔아 두니 다른 상가들에 비해 조명도 엄청 화려했죠. 그래서 그때는 그냥 구경 나오는 마니아들도 엄청 많았어요. 이 근처에 직장 다니는 젊은 손님들은 회사 끝나면 무조건 이곳에 들려서 구경하고 갔죠. 당시에 대표적으로 마란츠(Marantz), 매킨토시(Mackintosh) 제품들이 유행했어요. 예전 1989~90년대 손님들은 의리도 있고 가게에 대한 신뢰도도 있었어요. 손님이 한 가게의 주인과 친해지면 필요한 제품을 꼭 가게에서 구매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원하는 제품을 사려면 한두 달 넘게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도 꼭 그 가게에서 사려고 했죠.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으로 제품을 찾아보고 저렴한 매장을 찾아가 구입하거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직거래하게 되는 일이 많죠. 문화가 바뀌면서 오프라인의 가게들이 많이 힘들어지게 된 것 같아요.

Q.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많이 바뀌었나요?

지금은 워낙 신흥상가들이 많아지면서 세운상가가 많이 밀리게 됐죠. 세운상가에 오래 있던 선배님들도 신축 상가로 많이 이전하시게 됐어요. 음악을 좋아해 세운상가를 찾았던 마니아 손님들도 시대가 변하면서 더 깨끗하고 좋은 상가를 찾게 되니까 손님들도 전보다는 다른 곳에 많이 뺏기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골목이 없어지는 게 가장 아쉬워요. 당시에 골목에서 일하셨던 분 중에는 1960년대부터 판자촌에서 시작해 어렵게 점포를 장만한 분들이 많았어요. 작은 나사나 뚜껑 같은 부품들이 가게 여러 군데에 배치돼 있고 수소문 끝에 골목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서 부품 하나 사고 그런 정감이 있었죠. 재개발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골목을 보존했으면 좋겠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유명사에서 진공관 앰프를 20여 년 동안 취급을 했는데 1990년대 들어 진공관 앰프가 막 하향기에 접어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많은 소비자가 가정용으로 구매해 사용했던 진공관 앰프를 앞으로 아예 못 쓰는 줄 알았죠. 그래서 사두었던 진공관 앰프를 고물상에 처분하려는 분들이 있었어요. 당시 금액으로 300만 원 넘는 고가의 물건인데, 우연히 고물상에서 앰프들을 망치로 부수고 있는 걸 봤죠. 진짜 마음 아팠어요. 그때 망가졌던 제품 중에는 1,000만 원 넘는 제품도 있어요.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당시에 제가 전자를 전공하면서 실습할 때 필요한 전자 부품을 사러 세운상가에 많이 왔었어요. 엄지손톱만 한 부품 500원어치, 200원어치, 20원짜리를 사러 세운상가를 돌아다녔죠. 얼마 되지도 않는 부품들을 찾아주겠다고 매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던 사장님들이 아직도 생각나요. 참 정감 있죠. 지금은 작은 거 하나 사러 왔다고 말하기도 눈치 보이고 사장에게도 반가운 손님은 아니죠. 하지만 그땐 그런 게 당연한 그런 분위기였어요. 제가 생각하는 세운상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거에요.

생산된 지 59년이 된 앰프와 67년 된 스피커

Q. 세운상가에서 꾸준히 자리 잡으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몇 번이나 다른 곳으로 가게를 옮길 기회는 있었어요. 근데 또 이곳을 계속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계시니 못 떠나겠더라고요. 자주 오시진 않지만, 한 번쯤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해왔던 게 큰 것 같아요. 세운상가에 계시는 분들 대부분 4~50년 경력을 갖고 계세요. 다들 수십 년 해왔던 일이고 세운상가가 고향 같은 동네라서 못 떠나는 거죠. 다들 재개발이 돼서 점포가 없어져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 아닌 이상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계세요. 40년 넘게 한 저도 여기에선 어린 축에 속해요. (웃음) 지금도 일하시는 선배님들은 대부분 80살 넘으신 분도 많으시죠.

Q. 마지막으로 40년이 넘도록 이 일만을 해온 사장님께 세운상가란?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직업이자 정착했던 곳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이젠 내 일생이 되어버린 곳이에요. 그냥 세운상가는 제 인생이자 집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집보다 여기서 지낸 시간이 더 기니까요. (웃음) 최근에 저희 집사람과 살아온 인생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다시 돌아봐도 정말 후회는 없더라고요. 직장 생활보다 자유시간도 많았고 하고 싶었던 일도 다 하고 살았어요. 남들보다 돈은 많이 못 벌었어도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결국 세운상가를 선택하게 될 것 같아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안겨준 곳이기 때문이죠.

유명사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장사동 171 나열-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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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진행했던 박희진 사장님과의 인터뷰는 정말 따뜻했습니다. 사실 처음 인터뷰를 하면서 떨리는 마음도 컸는데 따뜻한 생강차까지 내어 주시고 너무나도 편안하게 해 주셔서 정말 할아버지 집에 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55년째 일하시면서 여전히 이렇게 열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신다니 정말 존경스럽고 멋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혹시 오래된 가게를 추천해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봤는데 너무나 친절하게 선뜻 길을 직접 안내까지 해주셔서 편안하게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신 장재하 사장님. 그 시절 소소한 이야기들을 직접 전해 들으니 저도 그때 그 시절이 상상되면서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는데요. 정말 그 시절에는 낭만이 깃들어 있던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김봉근 사장님과의 인터뷰를 끝내면서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뭉클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과거의 분위기와 에피소드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셔서 저까지 그 추억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활짝 웃으시면서 그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씀하신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세운상가에서는 탱크도 만든다”라는 말도 있었다는 소소한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재밌으면서도 이젠 너무나 조용한 세운상가의 골목거리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종로 추억탐방 시리즈] 세운상가 편, 재미있게 보셨나요? 세 분으로부터 1970~80년대 세운상가의 전성기에 대해서 들어본 시간이었는데요. 몰랐던 종로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종로에 오시면 세운상가를 한번 방문해보는 게 어떨까요?

 

 

종로픽플3기-장서윤 종로픽플3기-장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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