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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x PEOPLE | 종로 위 인생, 그 출발점을 찾아서 <2024 종로 어르신 인생 기록 프로젝트> 제작 후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01-15 00:00:01
  • 조회 : 98
ART X PEOPLE | 종로 위 인생, 그 출발점을 찾아서 | 2024 종로 어르신 인생 기록 프로젝트 제작 후기

우리는 때때로 관계없는 타인의 경험을 담은 영상과 글을 보고 생각지 못한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 마음에 공감하는 순간 내 이야기와 연결되며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선물하기 때문인데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내가 지나온 길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희망이 되기도, 그 감정의 진폭이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종로문화재단에서는 지난해 지역 어르신의 옛 추억과 인생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종로 어르신 인생 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종로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이번 프로젝트는 어른 세대와 미래 세대가 서로를 이해해 보고 종로가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종로의 어르신들의 추억을 숏츠로 풀어보는 영상 '종로인터뷰 어제, 오늘, 내일'을 제작한 오디오비디오디스코 진경환 대표, 어르신 열 명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종로民話(민화)」(이하 「종로민화」)를 만든 미닝오브 정경희 대표를 만나 프로젝트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60초에 담는 찬란한 추억 <종로인터뷰 어제, 오늘, 내일>
오디오비디오디스코 진경환 대표

Q. 오디오비디오디스코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디오비디오디스코는 시각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션으로 숏폼, 뮤직비디오, 드라마, 예능, 광고, 전시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을 통해 의외의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게 저희 목표인데 이번 '종로인터뷰 어제, 오늘, 내일'의 경우 아카이빙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과 달리 청년 세대에게도 호응을 일으키기 위해 숏폼으로 기획했습니다.

Q. '종로인터뷰 어제, 오늘, 내일'의 제작 과정과 염두에 두신 점을 소개해 주세요.

SNS에 친화적이고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끌어야 하는 숏폼으로 기획한 만큼, 내용을 구성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특히 재미만 생각해 너무 가볍게 만들거나 주제를 희화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안 되기에 적절한 선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종로가 워낙 긴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도시인 만큼 종로의 어제, 오늘, 내일로 나눠 옛 기억과 앞으로의 기대를 함께 담았는데요. 각 편마다 주요 주제 외에 '내 삶의 원동력', 추천 맛집처럼 종로에 접점이 많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볼 만한 질문과 '국수 vs 국', '붕어빵 꼬리 vs 머리' 밸런스 게임, '우울해서 빵을 샀어요'라는 말에 대한 답변 등 어르신들의 귀여운 순간이 담긴 모습이나 세대 간에서도 공감을 일으킬 만한 재밌는 질문들도 기획했습니다. 우선 종로에서 오래 거주하신 분, 자녀들과 함께 종로에 머물고 계시는 분 등 재단과 협업했던 단체에 소속된 어르신들과 1차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내가 사는 이 도시를 기록한다는 취지인 만큼 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리에서 어르신들을 즉흥적으로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종로인터뷰 어제, 오늘, 내일> 촬영 현장 Ⓒ오디오비디오디스코
<종로인터뷰 어제, 오늘, 내일> 촬영 현장 Ⓒ오디오비디오디스코

<종로인터뷰 어제, 오늘, 내일> 촬영 현장 Ⓒ오디오비디오디스코

Q. 현장 인터뷰 과정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미리 계획된 촬영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고 평상시 촬영 인원보다 대폭 줄인 2~3명이 한 팀이 돼 움직였습니다. 날짜를 나눠 종각, 종로, 서촌, 동묘 등 여러 구역을 돌아다녔고 오래된 백년가게들도 섭외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촬영에 거부감이 많이 들지 않도록 카메라는 가장 작은 것을 사용했고 마이크도 몸에 부착하는 것이 아닌 핸디형 마이크를 준비했어요. 옷 속에 마이크를 숨기고 있다가 저희 촬영 취지를 설명드리며 조심스럽게 동의를 구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90% 넘게 거절하셨어요. 소정의 사례비를 드릴 수도 있었지만 어르신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아 어렵지만 이 과정을 고수했습니다. 나중에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는데 걸어가지 않고 가만히 서 계시는 분들, 친구들과 함께 계신 분들 위주로 섭외를 드리니 이전보다 많이 응해 주셨습니다.

Q. 제작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을 말씀해 주세요.

생각보다 종로에 오래 사신 분들이 많지 않은 게 문제였어요. 워낙 문화공간과 여가시설들이 많다 보니 타 지역에서 놀러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또 송해길, 서순라길 주변에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공방 대표님들이 계셔서 그분들을 통해 일부 어르신들을 섭외해 인터뷰를 계획했는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서시니 울렁증 때문에 말씀을 하지 못하셔서 계획된 촬영이 모두 무산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서촌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친구분들끼리 있을 땐 종로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카메라 앞에서는 못하겠다고 거절하셔서 정말 아쉬웠어요.

Q. 감독님에게 종로는 어떤 곳인가요? 프로젝트 전후로 달라진 생각이 있나요?

종로와는 접점이 많지 않아 익숙한 곳은 아니었는데 영상을 촬영하면서 듣던 대로 보물 같은 역사를 지닌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특히 오랜 시간 이곳에서 터 잡아 생활하시는 분들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더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처음으로 인왕산에 가 봤는데요. 나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곳을 누볐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제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곳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종로를 향한 구민분들의 애정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 영상을 촬영했다면 지금 같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예전과 달라진 종로의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았는데 그분들의 말씀처럼 이 도시가 긴 시간 지켜온 정체성을 간직한 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좋겠어요.

Q. 프로젝트를 마친 소감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사전 약속 없이 즉흥적으로 섭외해 촬영하고 조명이나 다채로운 앵글을 배제한 채 생생한 모습을 담는 게 저희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숏폼이 인기 있는 이유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편안함인데 어떻게 하면 더 예쁘고 정리된 화면을 만들까 고민하는 게 익숙해 편집 과정에서도 마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재단 담당자분들이 있어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선명히 간직하고 계신 어르신들의 기억과 종로를 향한 애정이 이 영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종로를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종로民話(민화)」
미닝오브 정경희 대표

Q. 미닝오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닝오브는 영상, 출판, 전시・문화 기획 등 기록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입니다. 영화 연출을 공부하며 장은진 공동대표를 만났고 저희 모두 다큐멘터리와 극에 관심이 많아 이 분야를 사업화해 보기 위해 '미닝오브'를 열었어요. 2021년에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종로 풍경을 미술 작품과 책으로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 이번 미니 자서전 「종로민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종로민화」 인터뷰 현장 Ⓒ미닝오브
「종로민화」 인터뷰 현장 Ⓒ미닝오브
「종로민화」 인터뷰 현장 Ⓒ미닝오브
「종로민화」 인터뷰 현장 Ⓒ미닝오브

「종로민화」 인터뷰 현장 Ⓒ미닝오브

Q. 「종로민화」의 제작 과정과 염두에 두신 점을 소개해 주세요.

참여자 접수를 우선 받았지만, 아무래도 타깃이 어르신들이기에 홍보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종로에 자리한 노인복지센터를 통해 섭외를 요청드렸고 재단에서 진행했던 '옛날 사진 공모전'에 참여하신 분들께도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의 지난 삶과 이야기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추억 회상 워크숍'을 열었는데요. 출생일, 고향, 좌우명, 나의 일생을 간략히 적고 추억을 가진 종로 속 공간과 에피소드를 사진과 함께 구성해 '기억 수첩'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어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과 종로에 관한 감정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고 현장에서 「종로민화」 참여를 요청드리며 최종 인터뷰이를 선발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도 생애구술사적으로 접근해 인터뷰이의 어투나 사투리도 최대한 살렸고 일화와 관련된 편지나 일기, 특징적인 물건과 공간도 사진으로 찍어 기록했습니다. 종로를 위주로 한 내용을 주로 담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강조되지 않도록, 종로 안에서의 삶의 흐름이 좀 더 느껴지도록 구성했습니다. 또한 참여자분들이 '나만의 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어르신들 이야기마다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열 분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통합해 인쇄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만 그렇게 하면 특정한 부분만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나가면서 책에 대한 애정도 떨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미니 자서전  「종로민화」 Ⓒ종로문화재단
미니 자서전  「종로민화」 Ⓒ종로문화재단

미니 자서전 「종로민화」 Ⓒ종로문화재단

Q. 제작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을 말씀해 주세요.

'어르신 인생 기록 프로젝트'라는 이름처럼 「종로민화」 역시 자서전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방대한 인생 이야기 중 종로에 얽힌 기억을 위주로 편집돼야 하고 여러 차례 인터뷰가 가능한 자서전 제작과 달리 시간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내 일상을 기록하는 일이 지금 세대에겐 익숙하지만 어르신들에겐 그렇지 않다 보니 인터뷰 전에 이뤄지는 사전 정보 수집 과정이 무척 중요했어요. 어르신들이 재단에 제출하신 자료 및 '추억 회상 워크숍' 내용을 분석해 어떤 이야기를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것인지 철저하게 계획했어요. 어르신들이 적어 주신 내용을 바이오그래피로 정리하고 인터뷰 질문지도 구체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라포가 형성돼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어요.

Q. 보통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나지만, 노인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 중 하나는 자아 통합감입니다. 자신의 생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아를 존중했을 때의 느낌을 의미하는 말로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로 보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죽음의 공포를 잊고 삶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종로'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힌 추억을 다뤘지만 이 장소와 그곳에서의 생애를 돌아보는 과정 자체가 어르신들에게 일종의 심리치료가 된 것 같아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관련해서 김종임 선생님이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20살 때까진 전남 완도에서 살다 결혼한 뒤 종로로 와 남편과 세탁소를 운영하셨어요. 하지만 얼마 안 돼 큰 불이 났고 함께 있던 살림집도 다 타버려 길거리에 나앉게 되셨고 주민분이 빌려준 창고에서 생활하며 다시 일어서기 위해 정말 고생하며 사셨습니다. 어르신들의 경우 옛날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굳이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 보고 싶지 않아 말씀을 잘 안 해 주실 때가 많아요. 김종임 선생님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셨습니다. 선생님과 라포를 형성하며 나름 여러 이야기를 끌어냈지만 행여나 나중에 이 이야기는 삭제해 달라고 말씀 하실까 봐 걱정됐어요.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출간 기념회 때 너무 좋았다며 인사해 주셨는데 다신 돌아보기 싫었던 그 시간을 그래도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던 순간으로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시절을 긍정적이게 받아들이시는 모습에서 저희도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Q. 기록물로서 책이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희도 영상이나 사진 같은 다른 매체로 기록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손에 잡히는 물성, 그 감각이 주는 '내 것'이라는 인식은 책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또한 영상의 경우 편집자의 의도와 순서에 따라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책은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보거나 그 자체를 편집해서 나만의 것으로 다시 만들 수도 있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상과 달리 일정한 시간 집중해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하기에 깊이 빠져들 수 있고 대중을 짧은 시간 안에 끌어들여야 하는 영상과 달리 그 내러티브가 조금은 느슨해도, 호흡이 다소 느려도 괜찮죠. 그리고 결국엔 자기 이야기인 자서전이 책이 갖는 물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경희 대표와 「종로민화」 참여 어르신들 Ⓒ종로문화재단

정경희 대표와 「종로민화」 참여 어르신들 Ⓒ종로문화재단

Q. 프로젝트를 마친 소감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인터뷰를 할 때 어르신들이 매번 '이 얘기가 도움이 되나요?', '의미가 있나요?'라고 반문하실 때가 많아요. 역사란 기록에 남을 만한 대단한 인물과 사건 같은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변화한 과정 그 자체가 역사이잖아요. 그 한 분 한 분의 삶들이 모이는 게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를 한 번 더 확인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3주 동안 어르신들의 집과 추억이 어린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는 과정이 무척 특별하고 재밌었습니다. 회사에서 많은 분들의 자서전을 제작하면서 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감명을 줄 방법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저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종로민화」를 통해 수많은 추억을 종로에서 쌓았고 「종로민화」에 참여했던 어르신들과 자서전을 보는 독자들도 같은 감정을 안고 가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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