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곱게 물드는 10월, 한(韓)문화 중심지 종로 곳곳에는 오색빛깔의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처럼 피어난다.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종로한복축제>의 풍경이다. 올가을에도 한(韓)문화 중심지 종로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복 축제가 펼쳐진다. 종로구와 종로문화재단은 '종로에 한복 꽃이 피다'라는 주제로 10월 9일부터 10월 24일까지 약 3주간 종로구 일대와 온라인에서 <2021 종로한복축제>를 개최한다. <종로한복축제>는 한옥, 한글, 한식, 한지 등 전통문화 확산에 앞장서는 종로구가 한복의 멋과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생활 속에서 한복을 입는 문화를 확산시킬 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와 한복 산업 육성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종로한복축제>는 종로의 거리와 문화공간을 축제의 장으로 활용해 시민과 함께 만들고 즐기는 축제다.
2016년부터 시작한 <종로한복축제>는 개최 2년 만에 2018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문화관광 육성 축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2018년과 2019년에는 '우리 옷 제대로 입기, 한복 토론회'를 열어 한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온택트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영상을 통해 세계전통의상과 궁중한복패션쇼를 함께 선보여 나라별 특색이 담긴 복식의 아름다움을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2021 종로한복축제>는 한복뽐내기대회, 한복패션쇼, 강강술래, 종로한복길 프로젝트 등 한복에 대한 모든 것을 오감으로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다. 다년간 축제에 참여해온 이혜미 한복 디자이너를 만나 <2021 종로한복축제>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1호 박광훈 침선장을 사사한 첫 번째 이수자이며, 전통복식미학으로 숙명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한 한복 디자이너입니다. 종로에서 나고 자라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2대째 한복 브랜드 '사임당 by 이혜미'를 운영하면서,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숭의여자대학교 패션디자인과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고, 그 외에도 한복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며 전세계에 한복의 매력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Q. 어떤 계기로 종로한복축제에 참여하시게 됐는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종로한복축제>의 김영수 예술감독님이 2016년에 한복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자문위원단을 꾸리면서 제게도 연락을 주셔서 참여하게 됐어요. 자문위원은 <종로한복축제>의 프로그램이나 운영 전반에 관해 한복의 전통을 보존하고 현대화하는 취지와 소비 트렌드에 맞는지를 검토해 자문하고 있어요. 그간 자문위원으로서 한복패션쇼의 디자이너를 추천만 하다가 올해는 예술감독님이 한복패션쇼를 직접 기획해보라고 기회를 주셔서 기획과 연출을 맡게 됐어요.
Q. 한복뽐내기대회는 어떤 프로그램인지 소개해주세요.
'한복뽐내기대회'는 종로한복축제의 대표적인 시민 참여프로그램으로, 한복을 사랑하는 전국의 남녀노소가 사진으로 한복 맵시를 뽐내는 행사예요. 요즘 사람들이 즐겨 입는 한복 속에서 전통과 아름다움을 선별해내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죠. 올해는 참가 부문을 일반부(만 13세 이상)와 어린이부(6~12세)로 나누고, 시상 내용을 세분화해 수상 혜택을 확대했습니다. 초창기에 비해 젊은 층의 참가도 늘고, 한복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수준도 날로 높아져 뿌듯합니다.
Q. 한복뽐내기대회의 심사 기준은 무엇인가요? 디자이너님이 평소 생각하셨던 한복의 의미, 가치, 매력과 연결해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실지 궁금해요.
심사 기준은 여러 가지인데, 저는 '조화성'에 가장 중점을 두고 심사합니다. 한복 자체의 미적인 조화와 한복이 일상과 어우러진 조화를 모두 고려하는 거죠. 그래서 치장한 듯 연출한 사진은 대회의 취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요. 인간에게 의식주는 꼭 필요하고, 그중에 '의복'은 입은 사람의 정신과 감각을 드러내요. 밖으로 드러나는 모양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삶과 이야기도 의복의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에 얽힌 사연이 심사 기준이 되기도 해요. 한복뽐내기대회는 단순히 예쁜 한복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한복의 매력을 발견하려는 것에 목적을 둡니다.
Q. 한복을 입을 때 맵시를 한층 더 살릴 수 있는 디자이너님만의 꿀팁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체형에 맞고, 상황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중요해요. 한복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피부색과 나이대에 맞는 색감, 디자인의 한복을 선택해서 입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디자이너로서 한복을 갖춰 입는 틀을 제시하기보다 조금 더 개성을 살려 한복을 입으라고 제안하는 편이에요. 옷에 맞는 격식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런 것에 얽매이면 한복과 더 멀어질 것 같거든요.
Q. 이번 한복패션쇼의 기획, 연출가로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한복패션쇼의 주제는 '과거와 현대, 미래의 공존'이에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종로가 미래에도 활기찬 곳이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패션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복도 신한복은 배제하되 현대적인 색감과 소재를 살린 전통한복으로 준비했어요. 기존의 한복패션쇼에서 벗어나 종로가 한복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을 덧입힌 한복을 선보일 생각이에요. 패션쇼의 주제에 맞게 종로의 전통과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와 현대적인 종로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영상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감각적인 영상 콘텐츠로 만들 예정입니다. 일반적으로 오프라인 패션쇼에서 관람객은 고정된 시점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온라인 패션쇼는 영상으로 제작되는 만큼 여러 시점에서 한복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Q. 패션쇼 자체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한복패션쇼는 더 생소한 것 같아요. 다른 패션쇼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워킹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에요. 쇼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다르고, 모델의 신체 사이즈도 달라요. 서양 패션쇼에서는 여자 모델 기준으로 175㎝ 미만의 모델은 무대에 설 수 없는데, 한복은 반대예요. 여자 모델의 키가 175㎝를 넘으면 맵시가 살지 않아요. 색감, 부피감, 소재 등 한복이 지닌 요소가 어우러질 때 나오는 아우라는 서양의 드레스 패션쇼와 일반 패션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Q. 한복 문화의 발전과 한복 산업 육성을 위해 앞으로 <종로한복축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전통에 매여 있지 않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이 발전하는 것이 한복 문화와 <종로한복축제>의 방향성이죠. 종로문화재단은 한복 문화 활성화 사업과 연계해 '종로 한복대여점 지원 사업'을 통해 전통한복을 바르게 입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지원해왔어요. 최근엔 한복 디스플레이와 홍보를 위한 컨설팅 지원도 하고 있는데, 한복 산업의 네트워크가 단단하게 형성될 수 있도록 사업을 점차 발전시켜 나간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Q.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복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져요. 마지막으로 한복을 좋아하는, 혹은 한복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예전엔 '우리 옷이니까 한복을 사랑해주세요'라고 했는데, 지금은 '한복이 예쁘면 한복을 입어주세요'라고 말해요. 한복을 예쁘다고 느끼지만 부담스러워 못 입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한복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옷이 아니라 입고 싶은 옷이어야 해요. 특별한 날만 입는 불편한 옷이 아니라 '예쁜 우리 옷'이라는 자부심을 함께 느꼈으면 해요.
INTERVIEWEE |
이혜미(한복 디자이너, <2021 종로한복축제> 추진위원)
기획 | 이상미 편집 | 슬로우모어 사진 | 김태화, 종로한복축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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