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춤을 '또 다른 언어'라고 말합니다. 행복과 슬픔, 사랑, 자유처럼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감정을 신체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움직임 하나하나에 나의 느낌과 감정을 담는 데 몰입하다 보면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부정적인 생각과 한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로문화재단에서는 SNS를 통한 댄스 챌린지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춤을 보다 가까이에서 접하고 예술 무용으로서 깊이 배워보는 <찾아가는 종로 모던댄스 : 안녕! 춤으로 얘기해>(이하 찾아가는 모던댄스)를 개최했습니다. 매 작품마다 혁신적인 시도로 주목받는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와 국내 최정상 브레이킹 그룹 '갬블러크루'가 함께한 이번 프로젝트는 종로구 학교 8곳에 두 팀이 방문해 렉처 퍼포먼스 열고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하나의 창작 작품이자 예술로서 춤을 바라보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지경민, 박지훈 대표를 만나 준비 과정과 참여 후기를 들어봤습니다.
현대무용과 비보잉이 보여주는 춤의 매력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는 비상한 재주로 사람을 홀리는 '한국의 도깨비들(GOBLIN)이 모인 정당(PARTY)'이란 이름처럼 컨템퍼러리 댄스를 기반으로 이색적이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창조적인 안무와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움직임으로 관객의 시각을 확장하며 주목받았습니다. 2002년 결성된 갬블러크루는 창단 후 지금까지 수많은 국내외 대회에서 수상하고 브레이킹 국가대표와 감독, 코치를 배출한 브레이킹 그룹입니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어떤 장르와도 어울리는 춤을 선보이고 대중이 스트리트 문화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브레이킹의 매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 팀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 아닌데요. 지난해에는 자유로운 소통과 개방의 상징인 동네북을 현대무용과 비보잉으로 재해석한 작품 <동네북>을 선보였습니다.
박지훈밝고 쾌활한 팀 분위기를 가진 고블린파티와의 작업은 늘 즐거웠기에 이번 <찾아가는 종로 모던댄스>도 함께하게 됐어요. 저희 팀 내에 남자 무용수가 없어 안무나 표현의 한계가 다소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다채로운 작업을 할 수 있었고, 팀 분위기도 환기시켜주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스타일과 생각이 다른 두 팀이 함께 작업할 때 충돌하는 일도 종종 있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물론 협업했던 작품마다 보여주셨던 지경민 대표님의 제작 능력, 긍정적인 에너지와 배려가 저희에게도 좋은 영향을 전해 주셔서 함께할 때마다 설레고 기대됩니다.
지경민개인적으로 저희 팀이 현대무용단들 중에서도 춤 자체의 테크닉이나 기술이 조금 약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화려한 테크닉과 기술을 가진 갬블러크루와 함께해 더 흥미롭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장르의 춤들과 달리 현대무용은 명확히 정해진 기술이 없는 만큼 다른 무언가와 합쳐질 때 더 돋보이는데요. 그런 점에서 갬블러크루와의 협업은 늘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일상은 잠시 멈춤 : 감각을 깨우는 시간
지난해 9월 첫 기획회의를 가진 두 팀은 10월 작품을 완성한 후 두 달 가량 무대를 위한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12월 2일 서울세검정초등학교를 시작으로 12월 27일 배화여자고등학교까지 여덟 번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했습니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공연이 이뤄져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학생들이 춤에 관한 지식과 춤을 느끼는 감성 모두를 배울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했다고 전했습니다.
박지훈전체 기획과 안무 제작, 총괄 모두 지경민 대표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첫 기획회의를 연 뒤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의 종로 역사 속 춤과 관련된 자료들을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경민 대표님이 대본을 쓰고 안무를 제작했어요. 진행을 제가 맡으면서 1차로 주셨던 대본을 이야기하기 편한 말로 일부 수정해 완성했습니다. 렉처 퍼포먼스인 만큼 춤에 대한 교육적인 부분도 들어가야 했는데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는 느낌이 들까 봐 조금 유치하더라도 재밌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요청드린 부분이 많았는데 그동안의 팀워크 덕분인지 두 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아요. 여러 공연들 중 청운중학교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남학생들만 있어 공연 전 분위기를 보려고 방송반 친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어요. 게임을 주제로 짧은 수다를 떨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대화가 잘 통해 즐거웠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그 친구들이 너무 재밌었고 몰랐던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됐다는 소감을 말해줘서 기분이 좋았어요.
지경민비슷한 형식의 공연을 해본 적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교육과 재미를 모두 전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기초예술로서 장르별 춤들의 특징과 브레이킹의 역사 외에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이뤄진 댄스 배틀 이야기 같은 종로의 춤 이야기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또 50분이 꾸준히 집중하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라서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작품을 구성했어요. 학교라는 장소성이 짙게 느껴지는, 모든 게 정돈되고 교훈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고 각각의 퍼포먼스에 맞춰 음악과 영상을 제작해 일방적으로 춤을 관람하기보단 움직임이 주는 감각을 떠올려 보도록 구성했습니다. 평온함과 생동감 같은 상대적인 느낌이 드는 테마로 각각의 퍼포먼스를 기획했어요. 한 번씩 학생들의 집중을 환기시켜주는 김현빈 퍼커셔니스트의 연주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함께 움직이고 관람하는 즐거움
일부 학교에서는 렉처 퍼포먼스 외에 크루들과 함께 춤을 배워보는 댄스 워크숍이 진행됐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춤을 통해 내 몸을 이해하고 움직임으로 나의 감정을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두 사람은 이번 <찾아가는 종로 모던댄스>가 체험하는 예술의 즐거움을 배우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춤의 매력을 발견한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박지훈보통 공연을 관람했던 기억은 오래 남지 않아요. 그런데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뭔가를 만들었던 기억은 굉장히 오래 남죠.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은 예술 경험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직접 부딪히며 추억을 만드는 체험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했는데 워크숍 때 그런 모습 없이 마음껏 춤추는 학생들을 보면서 춤에 대한 학생들의 관용도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직업으로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프로그램 덕분에 춤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줄 수 있어 기뻤습니다. 춤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또 다른 렉처 퍼포먼스와 공연으로 춤의 긍정적인 모습을 알리고 싶어요.
지경민청소년기는 공연을 관람하는 데 있어 가장 단절된 시기예요. 이때 공연을 본 경험이 긍정적으로 남아 있다면 성인이 됐을 때도 꾸준히 공연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학교에서의 공연 경험은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을 배우는 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문화예술 시장에 있어서도 새로운 관객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죠. 종로에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수많은 공간들이 있어요.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에게는 큰 혜택 중 하나인데 이번 <찾아가는 종로 모던댄스>가 청소년들에게 공연을 관람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시간이 됐길 바랍니다. 8개 학교 공연이라서 길고 험난한 여정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저희 팀은 기초예술로서 현대무용 공연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 같은 환경에서의 공연이 익숙하지 않아 학생들이 지루하게 느끼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우려와 달리 잘 마무리됐고 학생들을 위한 좋은 레퍼토리가 나오게 돼 무척 기쁩니다. 춤에 대한 관심을 지속할 수 있도록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